이동환 바텐더가 다시 그린 

'뱃놀이를 즐기는 오찬'

햇살 아래 만난 그림 한 장과 술 한 잔, 

기쁨과 웃음을 향한 진심이 그려낸 장면


저 멀리 강 위를 떠다니는 조각배의 돛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 난다. 아마도 점심시간을 막 지났을 오후. 파리 외곽 샤토 강을 바라보고 있는 레스토랑 <메종 푸르네즈> 테라스에 모인 사람들의 말과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은 르누아르의 '뱃놀이를 즐기는 오찬'이다. 

산뜻한 바람의 결, 배가 지나갈 때마다 찰랑이는 물소리, 가벼워지기 시작한 남녀의 옷차림과 붉게 상기된 얼굴, 웃음소리가 흐르는 여유로운 테이블을 상상하게 한다. 저렇게나 즐거운 표정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 중일까. 기분 좋은 소란함 속엔 과연 어떤 술이 함께 하고 있을까.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의 빛깔이 어째서인지 자꾸만 입맛을 자극한다.


Pierre-Auguste Renoir,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Pierre-Auguste Renoir,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유쾌한 상상을 안고서, 취재를 위해 특별히 문을 열어준 이동환 바텐더의 바 <기슭>을 찾았다. 한참 기온이 올라가던 완연한 봄, 한껏 길어진 낮의 햇살이 바 내부 깊숙이 닿아, 테이블과 바닥까지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으로 그가 내어준 한 잔을 마주했다.


이동환 바텐더가 명화 속 한 잔을 상상하며 내놓은 술은 ‘펀치’다. 펀치는 고대 힌디어로 숫자 5를 뜻한다. 전통적으로 술, 감귤류, 당, 물(아락이라는 사탕수수를 증류한 독한 술이 들어갔기 때문에 희석을 시켜야 했다), 향신료까지 5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크든 작든 사교계 모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술이 바로 이 펀치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표정과 즐겁게 꽃 피웠을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바텐더는 덧붙였다. 

보통의 펀치라면 떠가는 순서에 따라 선호하는 과일을 함께 음미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의 펀치는 평등한 맛의 밸런스를 지녔다. 소비뇽 블랑과 '수즈'라는 용담이 주재료인 리큐르를 기주로 삼고 팔삭, 오렌지, 레몬 등의 다양한 시트러스, 화려한 패션프루트, 리치를 더했다. 그리고 다양한 컬러의 향신료 믹스 오일과 허브 믹스 오일을 활용하여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색채를 구현했다. 색깔 별로 느낄 수 있는 맛이 다양할뿐더러 각각의 색이 섞였을 때 느낄 수 있는 퍼포먼스는 또 색다르다. 


마치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색채와 붓터치를 뽑아내어 잔으로 옮겨 담은 듯했다. 첫 모금에 느껴지는 감귤류의 새콤달콤한 맛과 풀 향 같은 허브 터치로 긴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까지 오랫동안 입안을 감도는 다양한 향이 마치 파티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야말로 햇살 아래 축제였다. 그 찬란한 한 모금을 머금고, 바텐더가 르누아르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띄운다. 시간을 뛰어넘어 공명한 두 예술가의 기쁨과 웃음을 향한 진심이 그 안에 담겨있다.

친애하는 르누아르 선생님께

 


어느덧 봄입니다. 길어진 낮 동안 지면에 내리쬐는 햇살이 참으로 눈 부신 날들입니다. 해가 짧았던 지난 계절에는 종종 선생님의 그림을 보며 일광욕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연이라는 것이 신기합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한 때 저는 선생님과 같은 화가를 꿈꾸었던 미술학도였습니다. 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거장들의 작품을 숱하게 모사했던 시절, 13살에 처음 만난 작품이 선생님의 ‘뱃놀이를 즐기는 오찬’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학에서 모사를 위한 그림 제비뽑기할 때도 동기들 모두가 피하고 싶어 했던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잘 아시지요, 이 그림 안에는 풍경도, 인물도, 정물도 모두 들어있다는 것을요. 그리는 동안은 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캔버스 가득 느껴지는 찬란함이 참 좋았습니다. 이 그림과의 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근 한 요청을 받은 탓입니다. 여러 작품 중에 하나를 골라, 해당 그림 속 한 잔을 상상하고 만들어달라는 의뢰였습니다. 후보중에 포함된 선생님 작품을 확인하자마자 제가 어떤 마음으로 웃었을지 상상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바텐더로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년에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La douleur passe la beaute reste”(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제가 평소 하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텐더로서 제 개인의 희로애락과 기대 내지는 어려움들도 있으나, 저희 바를 찾아 주시는 손님들이 많이 웃고 즐거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항상 바 앞에 섭니다. 선생님의 문장으로 바꿔 말해본다면, “고통은 지나가고, 웃음은 남는다”가 되겠군요.


한 번쯤, 저희 바 ‘기슭’에도 들려주시면 어떨지요. 아, 저희 바는 밤에 문을 열기에 한낮 같은 햇살 가득할 풍경은 보기 힘드시겠지만, 대신에 제가 만든 햇살을 담은 듯한 펀치를 만들어 내어드리겠습니다. 제가 붙인 펀치의 이름은 <La vie est belle,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슭' 바텐더, 이동환 드림


*편지 글은 바텐더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EDIT. 염서정

PHOTO.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