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르누아르 선생님께
어느덧 봄입니다. 길어진 낮 동안 지면에 내리쬐는 햇살이 참으로 눈 부신 날들입니다. 해가 짧았던 지난 계절에는 종종 선생님의 그림을 보며 일광욕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연이라는 것이 신기합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한 때 저는 선생님과 같은 화가를 꿈꾸었던 미술학도였습니다. 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거장들의 작품을 숱하게 모사했던 시절, 13살에 처음 만난 작품이 선생님의 ‘뱃놀이를 즐기는 오찬’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학에서 모사를 위한 그림 제비뽑기할 때도 동기들 모두가 피하고 싶어 했던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잘 아시지요, 이 그림 안에는 풍경도, 인물도, 정물도 모두 들어있다는 것을요. 그리는 동안은 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캔버스 가득 느껴지는 찬란함이 참 좋았습니다. 이 그림과의 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근 한 요청을 받은 탓입니다. 여러 작품 중에 하나를 골라, 해당 그림 속 한 잔을 상상하고 만들어달라는 의뢰였습니다. 후보중에 포함된 선생님 작품을 확인하자마자 제가 어떤 마음으로 웃었을지 상상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바텐더로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년에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La douleur passe la beaute reste”(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제가 평소 하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텐더로서 제 개인의 희로애락과 기대 내지는 어려움들도 있으나, 저희 바를 찾아 주시는 손님들이 많이 웃고 즐거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항상 바 앞에 섭니다. 선생님의 문장으로 바꿔 말해본다면, “고통은 지나가고, 웃음은 남는다”가 되겠군요.
한 번쯤, 저희 바 ‘기슭’에도 들려주시면 어떨지요. 아, 저희 바는 밤에 문을 열기에 한낮 같은 햇살 가득할 풍경은 보기 힘드시겠지만, 대신에 제가 만든 햇살을 담은 듯한 펀치를 만들어 내어드리겠습니다. 제가 붙인 펀치의 이름은 <La vie est belle,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슭' 바텐더, 이동환 드림
*편지 글은 바텐더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