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는 취향을 제안하다

아티스트보틀클럽

논알코올 시장이 난리다.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운 몇 천 억대 금액이 언급되며 시장의 성장이 예견된다. 증거도 충실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나. 편의점 냉장고, 그것도 맥주 외에는 사실 잘 모르겠지 않은가. 여기,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지고 논알코올 시장의 성장을 말하는 곳이 등장했다. 정확히는 성장을 꿈꾸고, 새로운 문화를 도모하는 곳이다.

결핍에서 발견한 가능성

 

지난 5월 24일, 논알코올 드링크 쇼룸 <아티스트보틀클럽>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결핍’을 주제로 회화나 조형물을 선보이는 지미례 작가 협업 전시도 함께였다. 이런 자리에 사람들 손에는 의례 술이 들려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에서는 논알코올 와인과 맥주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알코올이 결핍된 자리는 사람들의 흥겨움으로 채워졌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로운 방식으로 축포를 터트린 이는 이재범 대표. 야근 많기로 소문난 광고 업계 출신이다. 프로 야근러들 마음 속엔 누구나 최애 야식이 있기 마련. 그에게는 그것이 치킨이다. 팀원들과 배달시켜 먹을 때면 다들 맥주 한 잔이 아쉬웠다. 근무를 이어가야 하기에 맥주 대신 손에 든 건 편의점에서 구매한 논알코올 맥주. 단순히 임시 방편이라고 생각했던 논알코올 맥주는 어느 순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퇴근 길에도, 주말 밤에도 심심치 않게 그의 손에 들렸다. 평소 취하기 보다는 술의 맛과 향을 즐기는 그에게 맥주의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딱, 그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성’ 측면에서는 분명 아쉬웠다. 논알코올 비즈니스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획일화를 기피하는 창작자로서의 본능이 발동한 것이 아닐지. 아마존 직구로 그러모은 논알코올 제품들을 하나하나 맛볼 때마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일었다. 아주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명감 같은 것. ‘이거 된다’라는 사업가적 마인드 보다는, ‘이거 할 수 있다’ 내지 ‘해야 된다’같은 전파자의 마음이 앞섰다. 그렇게 <아티스트보틀클럽>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논알코올 온라인 셀렉트 샵 ‘레프’가 먼저 문을 열었다.

술의 대체제가 아닌, 공존하는 아트 피스


이재범 대표의 마음을 가장 동하게 한 건 맛은 기본이고, 그 맛을 구현해 나가는 제조사들의 진심이었다. 메일링을 하고, 인스타그램 DM을 주고받고, 때로는 국내외 제조 현장으로 달려가 그들을 만났다. 어떻게 하면 알코올 없이 술을 마시는 듯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수백 수천 번의 테스트를 불사하고, 좋은 원료를 고집하는 그들을 보며 제품 하나하나 예술 작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류 신의 한 파트나 대체제가 아닌, 독자적인 장르라는 생각이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도 같은 이유다. 작품은 응당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을 필요로 하는 법. 감각있는 소비자들, 어쩌면 또 한 명의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그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마련한 것이 연남동 쇼룸, <아티스트보틀클럽>이다. ‘Made by Artist, For Artist’라는 슬로건과 함께.

아티스트들과 다음을 꿈꾸다 


가오픈으로부터 2개월. 러닝이 취미인 외국인 손님, 임신한 아내와 방문하는 남편, 원래는 동네 바 호핑이 취미라는 중년 손님 등. 벌써부터 단골 아티스트들이 생겨난 덕에 대단하지 않은 매출에도 이재범 대표는 요즘 신이 난다고 한다. 길거리 시음이나 정기 구독, 한 달에 한 번 주제가 있는 시음회, 게스트 바텐딩 등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아티스트보틀클럽>을 방문하면 이달의 와인 시음이 가능하고 글라스로도 즐길 수 있다. 쇼룸 안팎에 걸터 앉아 시간을 보내도 좋고, 맘에 드는 한 병을 구매해 근처 연트럴파크로 향하는 것도 지금 이 피크닉 시즌에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쇼룸은 차가운 메탈 소재와 따뜻한 우드 스툴, 테이블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짙은 보라색 포인트의 바닥 외 벽은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흰색으로 마감했다. 논알코올 드링크라는 작품을 위한 구조물 외에 모든 군더더기를 덜어낸 것. 직접 수입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논알코올 와인 ‘캘리 골든 스파클러(Kally Golden Sparkler)’, ‘캘리 로제 스파클러(Kally Rose Sparkler)’, 국내 논알코올 맥주 브랜드 어프리데이와 공동 개발한 ‘아티스트보틀클럽 B 라거’를 비롯해 와인, 맥주, 스피릿, RTD 등 총 60여 종의 ‘작품’이 있다. 걔중 몇몇은 아쉽게도 구매는 어렵다. 알코올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재료들이 사용되는데, 한국에서 한 번도 사용되거나 수입된 적 없었던 식재료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제 아무리 유기농이라 하더라도 식약처의 허가가 매우 까다로워 아쉬운 마음에 전시라도 한 것이다. 법은 언제나 문화를 늦게 따라오는 법이다. 이곳이 기폭제가 되어 논알코올 드링크 문화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면 허들을 낮추고 더 다양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