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대로 55길에서 보내온 새로운 초대장

바 키즈 KIEZ

궁금했다. 이름 굵직한 바들이 즐비한 청담동 바의 성지,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바의 성지 ‘도산대로 55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대체 누구인지. 알음알음 수소문을 해도 정체를 쉬이 알 수 없었다. 궁금해서 몇 번을 드나들었다. 이렇게 유쾌할 수가. 이렇게 직관적인 맛일 수가. <바 키즈>의 신동열 오너 바텐더가 내밀었던 건 비장한 도전장이 아니라 환대의 마음을 가득 담은 초대장이었다. 

유니폼 말고 청바지, 커버 차지는 없어요.

 

반팔 티에 청바지. 매일 입는 차림이니 신동열 오너 바텐더의 유니폼이라면 유니폼이겠다. 여전히 ‘청담’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로컬들이 느끼는 그 벽을 완전히 허물고 싶었던 <바 키즈>의 첫 번째 장치다. “바 커뮤니티가 커지려면 꾸준히 찾는 로컬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라는 그는 그래서 칵테일 가격도 낮게 책정했다. 커버 차지는 없다. 말인 즉, 두 잔 정도 마시면 5만원이 넘지 않고, 하이볼은 1만5000원이다. “하이볼 한 잔을 마셔도 자주 오는 손님이 이곳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라며, 그런 손님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정한 가격이다. 무엇보다 동네 친구 마냥 편안하게,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접객 에너지는 모방하기 힘든 <바 키즈>만의 무드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이런 바를 만들게 된 데에는 근무했던 <힐즈 앤 유로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바 신에 지쳐 있던 때, 잠깐 일을 도우러 갔던 곳에 반해 2년 반을 내리 일하며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고. 그리고 얻은 큰 깨달음. 브랜딩도 중요하지만 결국 바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즐기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것. 칵테일 바를 ‘성공’시키는 것과 ‘즐기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재료의 맛이 모두 느껴지는 칵테일


<바 키즈>의 칵테일 재료는 많아도 다섯 개를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재료는 명백하게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근래 칵테일 트렌드가 다소 과장되고 복잡하다고 느낀 그는 ‘손님을 위한 칵테일’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했고, 칵테일을 마실 때 재료의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직관적인 레시피를 설계했다. 그중 하나가 ‘사운즈 헬시 Sounds Healty’다. 본인이 아침에 즐겨 먹는 요거트 볼에서 착안한 것으로 진 베이스에 셀러리와 사과 주스, 요거트를 배합해 클래러파이드(산으로 단백질을 분리해 칵테일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법)했다. 두 번째는 ‘올드 패션드 무비 나잇 Oldfashioned Movie Night’. 버번 캐스크에 숙성 후 PX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싱한 토끼 소주를 사용해 올드패션드를 변주했다. 브라운 버터, 메이플 시럽 등을 조합하는데, 달콤한 버번 풍미가 물씬 느껴지는 사이사이로 소주의 향도 느껴진다. 팝콘 봉투를 접어 그 위에 칵테일과 팝콘을 함께 내는 모양새가 친구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어느날 밤의 무드를 자아낸달까. 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메뉴 ‘걸 넥스트 도어 Girl Next Door’는 직접 만든 바질 셔벗을 올린 푸르티한 칵테일로, 한 모금 크게 들이켜 마실 것을 추천한다. 딸기 요거트와 복숭아의 풍미가 푸릇한 바질 향과 함께 목 안으로 감겨 들어오며 일찍 찾아온 더위를 물리치고 ‘여전히 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빠꾸' 없는 편도 티켓


정식 오픈 한 지 이제 3개월. 한 달에 200시간을 넘게 일해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신동열 바텐더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공간 <바 키즈>는 그의 첫 가게. 공익 복무 시절 만난 구태형 공동 대표와의 약속이자, 10대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이민 생활을 하던 독일에서 용돈 벌이 차 처음 발을 들인 바 신이 꿈이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전까지 칵테일은 그저 술만 몇 가지 섞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선배 바텐더들이 만들어내는 한 잔은 요리에 가까웠다. 그 크래프트 정신에 반해 열심히 배워 손님에게 칵테일을 내던 날, 감동적이었단다. 손님들에게 음료를 내고, 가까이서 소통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고, 에너지를 돌려받는 이 순환 작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공간까지 직접 설계한 곳이라면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라고까지 생각의 가지를 뻗친 것이다. 

잠시 그 꿈을 접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즐거웠던 바 신을 뒤로 했던 때도 있었다. 전공인 재무를 살려 독일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시기, 우울증이 걸릴 정도로 인생이 마음에 안들었던 그는 한국행 편도 티켓을 끊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마도 30대에 끊은 편도 티켓은 이곳, <바 키즈>행이 아닐지.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질리지 않는, 멋지고 맛있는 그런 바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는 그에게 100년도 갈 수 있겠다는 사심을 내비쳐본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