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한 가지에

빠진 사람들


Vol.1 <카브론> 이승호 대표


국내에도 테킬라 유행이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다. 해외만큼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수입되는 브랜드가 다양해지고, 한 유명 브랜드가 지드래곤과 협업한 리미티드 컬렉션은 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남들보다 한발 먼저 트렌드를 캐치한 곳이 있다. 한남동에서 조용히 팬을 늘려가고 있는 <카브론>. 타코 맛집으로도 소문날 만큼 칵테일과 메뉴에 힘을 제대로 줬고, 인테리어와 조명, 음악까지 공간 전체에서 이국적이면서도 힙한 무드가 느껴진다. 기획자의 취향이 심상치 않다.

어떤 경험과 경력을 거쳐 <카브론>을 오픈하게 되었나.

페르노리카코리아, 하이네켄코리아, OB맥주 등에서 영업 전략 업무를 했다. 계속 주류 업계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트렌드에 민감해졌고, 한국에도 곧 테킬라 바람이 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테킬라를 워낙 좋아하고, 해외에서는 이미 유행이 시작된 상태라 ‘지금이다’ 싶어 열게 됐다.


<카브론>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비속어다.(웃음) 멕시코 인구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쓰는데, 내가 미국에 살 때 친하게 지내던 멕시코 친구들이 자주 쓰던 말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쓰면 욕이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친근하게 쓰는 표현이다. 억양도 어렵지 않고, ‘멕시코’라는 정체성을 담기에 딱 좋아서 이 이름을 택했다.


공간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공간을 채우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와서 함께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진정성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 빈티지 소품들을 가득 채웠고, 벽에 걸린 그림은 모두 친한 타투이스트의 작품이다. 멕시코와 테킬라를 다양한 소재로 위트 있게 풀어냈고, 사용하는 색감도 신경 써서 골랐다.

인테리어 콘셉트도 많이 고민했다. 테킬라는 흥이 오르는 술이니 점잖은 스타일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꾸미고 싶었다.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는 음악에 진심인 분들이 많아서, 디제잉 공간에도 공을 들였다. 클럽이나 라운지 가기 전에 가볍게 흥을 올리고 들를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 준비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전문 DJ 공연도 진행한다. 매번 다른 DJ들을 직접 선정하고 있고, 그들의 성향에 따라 하우스, 힙합, 디스코, 라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플레이된다.


테킬라와 메스칼을 전면에 내세운 바를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어떤 기대와 걱정이 있었나. 

칵테일로 풀기가 쉬운 술은 아니어서, 마시기 쉽게 만드는 게 가장 큰 미션이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값싼 테킬라를 샷으로 때려 넣고 취했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테킬라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하지만 사실 테킬라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술이라, 우리가 잘 모르는 고급 테킬라들도 많다. 그런 술들을 잘 소개해 보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다.


멕시칸 스피릿 외에 위스키 등 다른 술은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건지.

맥주는 판매하지만, 위스키는 없다. 초반엔 테킬라를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 위스키를 3종 정도 갖춰뒀었다. 그런데 테킬라 바를 하면서 위스키를 판매하는 게 좀 모순처럼 느껴졌다. ‘확실하게 가자’ 싶어서 과감히 제외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콘셉트를 아는 분들이 찾아주다 보니, 위스키를 찾는 손님도 거의 없다.

현재 바에는 몇 가지의 테킬라&메스칼이 있나.

90종 이상이다. 테킬라의 경우 믹스토(Mixto, 아가베 함량이 51% 이상으로 나머지는 다른 당분으로 채운 것)는 아예 취급하지 않고, 오직 아가베 100%인 제품만 들여놓고 있다. 


다른 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술도 있나.

프리미엄 테킬라 중에는 장기 숙성인데도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인 제품들도 있고, 테킬라나 메스칼 외에 다른 선인장을 사용하는 멕시칸 스피릿들도 꽤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소톨(Sotol)’이 있다.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서부 지역에 자생하는 ‘데저트 스푼((Desert Spoon, 학명: Dasylirion)’이라는 식물로 만든 증류주인데,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술이다.


최애 술을 소개한다면.

가장 좋아하는 건 ‘소모스 테킬라’다. 멕시코 할리스코 고지대에서 10년산 블루 아가베를 수확해, 프랑스산 X.O 꼬냑 오크통에서 36개월간 숙성해 만든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소량 생산되어 전 세계에 한정된 수량만 유통된다. 테킬라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도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 만한 술이다. 프리미엄 테킬라로 입문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편이다. 무조건 ‘프리미엄 테킬라=맛있다’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다. ‘올메카 알토스’나 ‘츌라비스타’ 같은 블랑코 테킬라도 즐겨 마신다.


국내 테킬라 유행은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미국의 경우, 리쿼샵에 가면 메인 아이템이 테킬라일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작년에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처음으로 샴페인 대신 테킬라가 공식 주류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 흐름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글로벌 주류 회사들이 국내에서는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프리미엄 테킬라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는 있지만, 대부분 소규모 수입사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대형 수입사들은 아직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업계 흐름을 보면 지금은 ‘초기 단계’라고 보는 게 맞다. 


테킬라/메스칼이 국내에서 대중화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한국의 유행은 늘 일본 같은 가까운 나라들보다 몇 년씩 늦는 경향이 있다. 지금 <카브론>에 오는 손님들만 봐도, 특정 브랜드를 콕 집어 주문할 정도로 ‘취향’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이나 거주 경험이 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본다. 유행이 오고, 대중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카브론>을 찾는 손님들은 취향이나 연령대, 성별 등 어떤 특징이 있나.

외국인 비율은 대략 20~30% 정도다. 동네 특성상 놀러 왔다가 가볍게 한잔하러 오는 분들이 많고, 음악 좋아하는 젊은 분 층의 손님들도 많이 온다. 잘 모르고 왔다가 테킬라에 입문하는 분들도 있고, 원래 테킬라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특히 재방문율이 높은 편인데, 아무래도 이렇게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 국내에서는 <카브론>이 유일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시그니처 칵테일을 소개해 달라.

테킬라 베이스 칵테일 중 가장 대중적인 건 단연 ‘마가리타’다. 일반적으로는 림에 소금을 두르지만, <카브론>에서는 소금을 거품 형태로 만들어 솜사탕처럼 칵테일 위에 얹는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코리엔더 킥’은 메뉴를 구상할 때 가장 먼저 개발한 칵테일이다. 고수, 할라피뇨, 라임주스, 설탕 등으로 만든 코디얼과 블랑코 테킬라를 사용하고, 고수잎과 할라피뇨를 가니시로 얹는다. 이국적인 여운이 낯설 수 있지만 개성이 강한 재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신경 써 완성한 메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에 이영학 바텐더가 칵테일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마가리타는 재료 선택에 특히 신경을 쓴다. 라임은 껍질부터 과육까지 모두 사용해 주스를 만들고, 소금과 당도 적절히 사용한다. 코앵트로, 소금, 설탕, 라임- 즉 테킬라를 제외한 마가리타의 핵심 재료들을 모두 넣어 만든 거품을 올려 마무리한다.” 일반적으로 칵테일 위의 폼은 특정 향이나 질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카브론>의 마가리타는 폼에 핵심 재료들이 모두 들어가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맛이 된다. 마치 마가리타의 예고편같달까. 


타코 맛집으로도 입소문을 탄 것 같더라. 메뉴는 어떻게 기획했나.

처음에는 지인에게 자문해 메뉴를 구성했다. 지금은 <엘 몰리노>를 거쳐, <에스콘디도> 헤드 셰프로 일했던 전승윤셰프와 함께하고 있다. 아무래도 ‘바’이다 보니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 위주로 구성했다. 도리토스에 사워크림, 살사 등을 얹은 ‘도릴로코스’, 멕시칸식 세비체인 ‘아구아칠레’, 포크·치킨·피시 3가지 종류의 ‘타코’, 그리고 ‘츄러스’ 같은 메뉴들이 있다. 타코에 들어가는 소스도 정통 스타일로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메뉴에는 계속 변화를 줄 예정이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브랜딩, 인테리어, 칵테일, 음식까지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을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 기쁘다.


<카브론>의 세 가지 타코 중 가장 인기 있다는 ‘피시 타코’. 멕시코산 건고추와 마요네즈로 치폴레 소스를 만들고, 발효한 반죽을 입혀 튀긴 대구 살을 올린다. 사이드에는 할라피뇨, 살사, 라임즙을 섞어 만든 살사 베르데를 곁들이는데,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셰프의 추천 페어링은 마가리타. 짭짤한 풍미와 기름진 피시 타코와의 조합이 좋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목표는.

벌써부터 “2호점 낼 생각 없냐”라는 질문도 자주 듣지만(웃음), 그런 목표는 딱히 없다. 그보다는 <카브론>이 ‘테킬라 바의 선발주자’로 사람들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 아직도 ‘바’라는 공간을 무겁게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카브론>은 정말 가볍게, 한두 잔 마시고 가는 분위기를 추구한다. 실제로도 그런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가볍게 마시고, 즐기고, 편하게 들렀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EDIT. 홍수연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