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되기를 거부하다
엠피리컬 스피리츠
EMPIRICAL SPIRITS


화이트 스피릿인 건 분명한데, 보드카도, 진도 아니다. 바에서, 행사장에서 차츰 눈에 띄며 존재감을 넓혀가는 이 술의 정체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쉐린 레스토랑 <노마 NOMA> 출신 세프가 만든 술. 엠피리컬의 공동 창립자 Lars Williams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는, 이내 이들의 술을 전통적인 카테고리 구분하려 했던 시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Lars Williams
Lars Williams

엠피리컬 스피리츠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감각 기억(sense memory)*’을 통해 풍미를 더 넓은 대중과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맛’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 그 경험을 어디론가 데려다줄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깊은 영감을 받았고, 요리사로서 쌓아온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위스키나 진처럼 기존의 정형화된 분류 방식에 얽매이는 것은 너무 제한적이라고 느껴 카테고리에 구애받지 않는 스피릿을 만드는 엠피리컬 스피리츠를 설립하게 되었다.


*감각 기억(sense memory)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시각·후각·청각과 같은 감각을 통해 떠오르는 기억


<노마>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았고, 그 경험이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노마>에서 R&D 총괄을 맡았다. 익숙한 재료에 완전히 새롭게 접근하는 시도, 필요한 재료를 직접 재배하거나 채집하는 과정, 그리고 멕시코 믹스(Mixe)*나 켄터키와 위스콘신의 사탕수수 생산자 등 다양한 공급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쌓아가는 일까지, 지금 내가 일하는 모든 방식이 <노마>에서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믹스(Mixe)
멕시코 오악사카주에 거주하는 원주민 공동체로 옥수수, 콩, 호박, 커피, 고추 등을 재배한다. 덴마크의 미슐랭 레스토랑 <NOMA>는 이 지역에서 수확한 특이한 향신료와 재료를 찾기 위해 이들과 협업하기도 했다.


셰프에서 증류사로 전향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노마>가 이전을 결정하면서 나에게도 전환점이 찾아왔다.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긴 여정을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인지. 그러던 중, 미식 씬을 이토록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피땀 어린 노력을 레스토랑을 찾는 소수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라면 가능해보였다. 혁신적인 풍미의 세계를 이 매개체를 통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싶었다.


설립 초기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나 철학은 무엇이었나.

‘풍미’다. 우리는 엠피리컬을 ‘플레이버 컴퍼니(Flavor Company)’라고 부른다. 이는 주방에서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집요한 노력과 비판적인 시각, 창의적인 발상, 그리고 재료에 관한 과학적인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풍미’라는 개념을 깊이 있게 다루고 나누겠다는 의미다. 풍미는 우리의 지표인 ‘북극성’이자,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된다. 원재료를 고르는 순간부터, 효모의 선택, 향의 균형을 잡아줄 보태니컬의 구성까지, 우리는 각 재료가 지닌 향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풍미는 동시에 우리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경험을 창조하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느낌을 전달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각적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플레이버 우선’ 철학과 ‘경험’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이 제품 개발과 브랜드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나.

우리는 ‘맛’을 최우선으로 두고 일한다. 이런 철학 덕분에 기존 증류주 카테고리에 갇히지 않고, 오로지 훌륭한 재료를 찾아내 그것을 독창적인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그리고 기술과 전통을 자유롭게 결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재료나 잊힌 재료를 자유롭게 다루며, 기존 공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단계를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하는 것도 우리의 강점이다. 또, 필요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직접 기계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향과 맛을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해해 다시 조립하며, 새롭고도 익숙한 풍미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증류주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증류주의 세계는 카테고리마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방식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어, 본질적으로 제약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습에서 벗어남으로써 선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 덕분에 지금껏 시도할 수 없었던 맛을 발견하고, 예상치 못한 연결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출발한 요리의 세계와 주류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과도 같다. 즉, 요리의 실험 정신과 풍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술 제조에 접목하고, 제한적이던 증류주 세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아지길 바라며, 풍미를 바라보는 방식을 함께 바꿔나가길 희망한다.


경계를 허무는 것이 주류 시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나.

이상적으로는 마치 지진처럼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고 싶지만, 우리는 아직 작은 팀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코펜하겐을 브랜드의 출발지로 선택했던 이유는.

<노마>를 떠날 당시 내가 살고 있던 곳이기도 했고, 단순히 맛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맛과 향을 새롭게 탐구하고 창조하는 실험과 혁신이 활발한 도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뉴욕 브루클린으로 본거지를 옮기게 된 이유와 그로 인해 변화된 점이 있다면.

뉴욕은 언제나 아직 분류되지 않은 것들의 온상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관점과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양한 분야 간의 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도시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가 늘 추구해 온 방향과도 깊이 맞닿아 있었다.


<53AD>바와 테이스팅룸은 어떻게 오픈하게 되었고, 그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나.

부쉬위크(Bushwick)에 위치한 R&D 시설로, 새로운 한정판 제품들을 연구·개발·생산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당 원료, 발효 방식, 풍미 추출 기술 등을 지속적으로 실험할 계획이다. 지역 내에서 영감을 얻되, 한정하지 않고 넓은 시야로 접근하고자 한다. 또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하는 이벤트도 준비 중이며, 바 공간에서는 전시, 아트쇼, 드랙쇼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창작 과정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재료에 매료되어 그 재료가 가진 풍미의 여러 층을 탐구하기도 하고, 그 과정 중에 또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전 세계의 재료에서 영감을 얻고, 계절의 흐름에 따라 자연을 길잡이 삼아 나아간다는 것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보태니컬이 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시도해 보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시음하며 맛을 확인한다. 엠피리컬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도구는 테이스팅 스푼일 것이다.


원재료 선정 시 중점을 두는 부분은.

우리는 기존 증류주 범주에 속하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증류주를 만들기 때문에,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증류해 본다. 굴, 그린 구스베리, 구운 닭 껍질, 가쓰오부시 등도 시도해 봤다. 또한 소나무, 구운 자작나무, 호두나무 같은 목재를 깊이 연구했고, 서양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약재로 쓰이는 블랙커런트 꽃봉오리, 앰브레트 씨앗(ambrette seeds), 베티버(vetiver) 같은 재료도 활용한다. 이런 재료들은 전통적인 증류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알코올을 ‘풍미를 담는 그릇’으로 본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진공 증류 방식을 선택한 배경과 이 방식이 제품의 풍미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은.

우리는 다양한 발효 방식을 활용해 복합적인 맛의 매트릭스를 만들고, 허브와 같은 섬세한 식물성 원료를 폭넓게 사용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가열 증류 방식은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유기화합물, 에스터(ester)를 변질시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신선한 느낌을 원했던 일부 재료가 가열로 인해 조리된 듯한 느낌이 생겨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풍미 경험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진공 증류 방식을 선택했다. 진공 증류는 원래 제약이나 향수 산업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으로, 용매의 끓는점을 크게 낮춰 발효물과 식물성 원료의 신선한 휘발성 풍 성분을 보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증류와 진공 증류의 차이는 마치 마멀레이드와 갓 짜낸 오렌지 주스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증류라는 목적은 같지만, 방식과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증류 과정에서 또 다른 특이점은 무엇인가. 

‘맛’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사실 수백 가지 유기 화합물이 조합된 결과다. 각 화합물은 분자량이 달라 증류 과정에서 증발하는 시점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100개의 컷*으로 세분화해 각 화합물을 분리하고, 그 안에 담긴 미세한 특징들을 탐색하며 다시 조합해 이상적인 풍미 구조를 만든다. 


*컷(cut)
증류 과정에서 특정 구간의 증류액을 분리해서 따로 모으는 행위. 보통 위스키 같은 증류주에서는 헤드, 하트, 테일 3가지 컷으로 나누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밀한 컷 분리가 제품의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 방식은 풍미를 정밀하게 조율하고, 미묘한 맛의 구조를 설계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컷을 세밀하게 나누지 않으면,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자동차(가속 아니면 정지만 가능한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섬세한 맛의 조정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맛을 포토샵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앞서 언급한 100개의 컷을 블렌딩하는 과정을 말한다. 각 컷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최종 블렌드에 포함할지지 조절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사진을 컴퓨터로 보정하거나 음악 믹싱 콘솔로 소리를 다듬듯, 맛을 정밀하게 조율할 수 있다. 창의적인 통제가 가능한 셈이다.

엠피리컬 스피리츠의 콤부차
엠피리컬 스피리츠의 콤부차
파실라 믹스 칠리(Pasilla Mixe Chili)를 생산하는 농부들
파실라 믹스 칠리(Pasilla Mixe Chili)를 생산하는 농부들

물 대신 콤부차를 사용해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는데, 콤부차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콤부차는 증류한 콤부차다. 일반적으로 도수를 낮추기 위해 물을 넣으면 맛도 함께 희석되지만, 증류 콤부차를 사용하면 도수는 낮추면서도 풍미는 더 강조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더할 수 있다.


개발 과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제품과 그 이유는.

아유크(AYYUK)다. 오악사카 외곽의 시에라 노르떼 산맥에 살고 있는 73가구의 농부들과의 협업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는 이분들로부터 고추를 직접 공급받고 있으며, 그 관계가 제품의 핵심이 되었다.


엠피리컬 스피리츠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준다면.

정해진 방식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로, 실험하듯 즐겨라.


앞으로 엠피리컬의 목표는.

우리는 계속 실험하고, 호기심을 갖고, 맛있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풍미’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 호기심 많고 두려움 없는 브랜드로 기억되면 좋겠다.


EDIT. 홍수연

PHOTO. EMPIRICAL SPIRITS


www.us.empirical.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