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16년째다. 이렇게 오래 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한규선 2000년대 웨스턴 바가 한차례 부흥했다가 쇠락한 후 ‘바’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장소가 지금 같지 않았다. 이 업이 생명력이 있는지,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지, 그것도 여자들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당시 국내보다 바 신이 발전한 도쿄를 돌아다니며 질문을 많이 던졌고, 그때 미야자키 상의 <텐더리 Tenderly>를 소개받아 여전히 연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50대였던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칵테일 메이킹에 대한 고민들은 어떻게 해소했나.
박시현 역시 일본을 많이 찾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구할 수 있는 책을 모두 구해서 독학했다. 자료가 없다 보니 손님들에게 책 선물도 참 많이 받았다.
오래된 바에서 단골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나.
박시현 ‘싱글몰트 위스키&칵테일’을 내걸었는데, 2009년에는 국내 수입되는 싱글몰트를 다 모아도 12종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극소수의 매니아들이 포항에서, 제주도에서도 ‘알고’ 찾아와주었다. 당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지금은 없어진 <미스터 사이몬 바>, <커피바 K> 청담, 그리고 <팩토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술들을 손님들이 가져와 함께 나눠 마시기도 했다.
한규선 우리도 잠 안 자고 공부하던 시절이다. 그때 으쌰으쌰 하며 함께 술 마시던 멤버들이 여전히 찾아와준다. 홍대에서 망하려고 작정했냐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손님도 많았다. 그땐 ‘정 안되면 우리가 다 마시지 뭐’라는 무모함도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