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I'M A

WOMAN

BARTENDER

Vol.1 바텐더에서 오너로 뗀 첫 걸음 앞에서



<객잔> 신가희 오너 바텐더


모든 걸 ‘운이 좋았다’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단단한 업장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했던 것만큼은 여성 바텐더로서 행운이었다고 말하는 그. 이제는 본인이 직원들의 보호자이자 동반자인 오너로서 바에 서 있고자 한다. 

바텐더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첫 시작은 2007년이지만, 진정으로 바텐더를 직업으로 여기고 다시 임하게 된 건 2011년이었다. 명품 여성 의류 브랜드 면접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인 만큼 마음을 붙이려던 차에 <디스틸>의 엄경섭 대표의 부름에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이전에 비해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일단 위스키가 정말 많았다. 보자마자 ‘공부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두근거리더라. 뒤도 안 돌아보고 일하겠다고 했다.



일을 시작하는 데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반대는 없었지만 어머니에게 썩 자랑스러운 딸은 아니었던 것 같다(웃음). 대기업 연구직으로 근무하다 2007년 처음 바텐더를 시작했을 때는 주변에서 딸래미 뭐하냐고 물으면 외식업에 근무한다고 얼버무리셨다. 다시 근무를 시작한 후에는 매거진을 비롯해 종종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다 보니 그제야 자랑스럽게 ‘우리 딸 바텐더다’라고 말하시더라. 시대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여성 바텐더로서 현장에서 편견과 부딪힌 경험은. 


그 시절의 저는 누가 뭐라하지 않는데도 굉장히 날이 서 있었다. 또래 여성 바텐더가 거의 없다 보니 남성 위주의 업계에서 ‘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저를 둥글게 만든 게 되려 손님들의 큰 지지와 사랑이었다. 편견과 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업장에서 성장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넘어진 적도 많은데, 굳이 이 직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 덕분이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손님들이 쓰는 돈이 아깝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여성 바텐더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정말 많다. 왕성하게 외부 활동을 하고, 대회 준비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며 같은 환경에 놓여 있다면 저는 과연 저렇게 치열할 수 있을 지 생각해본다. 절대 아니다. 차라리 일찍 시작하길 잘했다(웃음).



반면 여성 오너 바텐더는 여전히 드물다. 이유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일단 저와 동시대를 보낸 여성 바텐더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가정을 가지면서 다른 업계로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아닌가 싶다. 결혼과 육아는 비단 바 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사회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가기 힘든 이유이지 않나. 하물며 그 시절에 누가 바텐더 며느리를 반겼겠나. 저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 직업에 좀 더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뿐이다.

 


메이킹이나 운영적 측면에서 여성 바텐더만의 장점이 있다면. 

 

칵테일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건 각자의 취향과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았느냐의 문제다. 성별의 장점은 접객에서 종종 느낀다. 손님의 컴플레인이 있을 때, 남성 바텐더 보다는 여성 바텐더들이 다가가면 좀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객잔>은 모두 여성 바텐더다. 의도한 것인가. 


아니다. 저에게도, 손님에게도 편안한 업장이 될 수 있도록 오래 알아온 친구들로 꾸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런데 가게를 처음 찾는 여성 손님들이 조금 더 빨리 적응하는데 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허민영 바텐더가 <객잔>이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좋은 캔버스가 되어줬다면, 양혜영 바텐더는 밑그림 위에 색을 불어넣어주는 직원이다. 셋의 조합이 참 좋다.

<객잔>은 어떤 바인가. 


오래전부터 저를 ‘주모’라고 많이들 불렀다. 그래서 초가집을 콘셉트로 완성했다. 욕쟁이 할머니가 말아주는 국밥을 먹듯이, 편안하게 한 잔을 즐기러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입장부터 퇴장까지 공간 안에서 시선의 높낮이가 없도록 설계했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창도 25cm 너비의 기다란 가로 창 하나다.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바의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는 바깥 사람들 마음의 합치점을 창으로 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평균 신장과 의자 높이를 고려했고, 밖에서는 어깨 위로 얼굴을 볼 수 없다. 



대표 칵테일을 소개해달라. 


‘블러디 시저’는 베이스를 만드는데만 6-8시간이 걸린다. 바지락과 대합 모시조개 등과 셀러리, 토마토 홀, 생 토마토, 토마토 주스를 넣고 2시간 정도 끓인 뒤 건더기를 걸러내고 다시 남은 시간 동안 졸여낸다. 냉장 숙성한 이 베이스에 보드카와 타바스코, 우스타 소스 등을 곁들여 완성한다. ‘두부 김치’는 근손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한 칵테일이다(웃음). 거의 10여 년 전 해외에서 두부 칵테일을 먹고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했다. 다시 찾아가보니 원심 분리기를 쓰고 있더라. 그 질감을 흉내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두부의 맛과 질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직접 잣을 볶아 기름을 만들어 화이트 럼에 수비드 한 후 순두부와 크림치즈 등을 배합했다. 가니시로는 김치볶음밥 누룽지를 곁들여 낸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여성 바텐더들처럼 치열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더니. 칵테일에 쏟아 붓는 집념만큼은 스스로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 물으니, 그제서야 아스팔트 길도 갈갈이 깨서 자갈 밭으로 만들어 걷는 스타일이라고 웃으며 고백한다. 그래서 오히려 단단해진 지금의 그가 있었으리라.  

신가희에게 바텐더란 어떤 직업인가. 


처음엔 무작정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면, 지금은 잘 하고 싶다. 한 분야에 오래 있으면 보통은 자신에게 보다 여유로워지는 면이 있어야 하는데 어쩐지 갈수록 불안해진다. 직원들만 해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들이다 보니, 지고 싶지 않더라(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10년 후에 제가 바에 없었으면 좋겠다. 나이 50에 셰이킹을 하는 건 분명 멋진 일이지만, <객잔>은 허민영 바텐더에게, 또 좋은 가게를 만들어 양혜영 바텐더에게 물려주고 저는 파주에서 허브를 키우고 싶다(웃음). 그것만 해도 남은 10년이 굉장히 바쁠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10년 동안 어떤 바텐더로 불리고 싶나. 


칵테일을 잘 만드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바텐더 신가희에서 ‘오너’ 신가희로 호가 바뀐 삶이 제가 그리는 10년이다. 저를 믿고 함께 해준 친구들을 위한 기반을 잘 닦고 싶다. 직원들이 어떤 가게를 꿈꾸고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맞춰줄 수 있는지.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꿈꿀 때는 좌회전도 하고 우회전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사장은 정말 많은 시대 아닌가. 오히려 제대로 일하는 바텐더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바텐더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게 마땅하다. 지나온 나의 오너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제가 지금의 직원들에게 노력하는 것처럼.



신가희는 인터뷰 내내 이 가게는 ‘민영이꺼’라고 말했다. 냉장고를 설치할 때도, 기물 하나를 골라도 그와 함께 골랐다고 했다. 두 명의 바텐더와 눈물 콧물을 다 짜내며 힘든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 매출까지. 맘처럼 되지 않는 날은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물음에 ‘언젠가 그들이 해야 할 일 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것들이 가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지 직원일 때 알기 어려운 것들을 알려주고 자신이 있는 힘껏 노력한다면, 직원들이 오너가 됐을 때 다시 그들의 직원들에게 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칵테일 맛있게 만들던 바텐더 신가희는, 그렇게 이 신을 맛있게 가꿔 나가는 오너로 익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걸출한 여성 오너 바텐더, 아니 또 하나의 오너 바텐더가 배출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DITOR. 장새별

PHOTOGRPHER.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