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highball

Vol.1

소다인가요, 토닉워터인가요?

치익-


좁은 캔 안에 갇혀 있던 탄산이 일제히 탈출하며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기포가 하얗게 차오르는 모습이 시원해 보이긴 한다. 요즘같이 덥고 습한 날씨엔 상상만으로도 갈증이 반쯤 해소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난 탄산이 싫다. 


한입 마시려고 잔을 기울이면 기포가 얼굴로 제멋대로 튀어 오르는 것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따끔한 자극도, 배를 빵빵하게 만드는 더부룩함도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맥주보다는 소주를 선택했다. “오~ 술 잘 마시나 봐?” 이 지루한 멘트를 듣는 편이 나았다. 탄산을 견디는 것보다.


그런 나에게 하이볼(여기서 말하는 하이볼은, 식당이나 동네 주점에서 나오는 손잡이 달린 두꺼운 잔에 각얼음을 수북이 담고 머들러까지 꽂힌 스타일)은 소주와 맥주 사이의 적당한 타협점이었다. 소주는 좀 부담스러운데 맥주는 싫고, 그럴 때 마시는 한 잔. 탄산감은 부드럽고 알코올은 부족함 없이 채워주는 기특한 음료. 금은 하이볼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위스키, 홈술 붐을 따라 산토리 가쿠빈, 메이커스 마크, 몽키숄더 같은 위스키들이 우리집에도 하나둘 늘어났다. 언제든 마실 수 있게 냉장고에 진저에일, 토닉워터를 채워두고 하이볼을 타 마셨다. 

“아, 하이볼 맛있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바 경험이 전무한 것도 아닌데, 이제껏 바에서 하이볼을 시켜본 적이 없었다. 바에서 하이볼을 주문하려면 좋아하는 위스키 베이스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어설픈 편견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작년 5월, 인생 처음으로 ‘진짜’ 하이볼을 만났다. 촬영 차 방문한 <임바이브>에서였다. 바에 있는 거의 모든 위스키로 하이볼을 만들어봤고, 전용 잔을 뒀을 정도로 하이볼을 애정한다는 최종천 바텐더의 하이볼. 궁금했다. 탄산이 죽지 않도록 잔의 안쪽 면을 따라 붓는 섬세함과 딱 한 바퀴의 스터링(Stirring). 촬영이 끝나고도 여전히 탄산은 살아 있었고, 위스키 향은 입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낯설지만 불편하지 않은 맛. 기존의 경험과는 다르게 단맛은 없었지만 맛있었다. 얇은 림(Rim, 글라스의 가장자리)이 입술에 닿아 증폭되는 청량함과, 꿀떡꿀떡 목으로 넘어갈 때의 통쾌함.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진짜 하이볼이구나’.


내가 여태 마신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음료를 섞은 넓은 의미의 하이볼류였고, <임바이브>에서 마신 건 위스키에 소다를 섞은 좀 더 본격적이고 좁은 의미의 하이볼이었다. 잔의 두께, 얼음의 모양, 스터링 횟수까지- 하이볼은 생각보다 고려할 게 많았다. 결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하이볼의 정의를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당시 촬영한 콘텐츠의 제목은 ‘여름의 구원酒’로 지었다. 더운 여름, 하이볼 한 잔이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괴로울 정도로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그건 최고의 찬사였다.


다시 찾은 <임바이브>에서 이번에는 가장 완벽한 상태의 하이볼을 마셨다. 위스키와 소다가 최적의 밸런스를 이뤄, 쌉쌀하고 쿰쿰하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맑고 청량한 한 잔. 하이볼을 마실 때 단맛 때문에 늘 음식과의 페어링이 아쉬웠는데, 사실 하이볼은 어떤 음식과도 어울리는 칵테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날, ‘진짜 하이볼’을 만난 나의 경험을 꼭 나눠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이볼은 결코 단맛이 나는 칵테일이 아니다. 누구나 잘 만들 수 있는 칵테일도 아니다. 위스키의 맛을 숨기거나 죽이지 않으면서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자, 평생 탄산을 싫어하던 사람을 한 모금에 홀릴 만큼 매력적인 음료다.

요즘 나는 바가 아닌 곳에서 하이볼을 주문할 때 꼭 묻는다. “소다인가요, 토닉워터인가요?” 그러고는 소다로 요청한다. 하이볼과 한 뼘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면서. 여전히 탄산이 싫지만, 하이볼 속 탄산은 한 방울도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길 바란다. 햄버거에 콜라는 안 마셔도, 바에서 마시는 하이볼은 몇 잔이고 즐겁게 마실 수 있다. 취향이 변한 게 아니라, 이제서야 나의 하이볼 취향을 발견했다.


오전 8시, 출근길에 땀을 너무 흘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부터 켰다. 찾아보니 오늘이 여름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절기, ‘소만’이란다. 이런 날씨에 하필이면 하이볼 원고를 마감하고 있자니 아침부터 하이볼 한 잔이 간절하다. 에어컨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무더위엔 시원한 수박 주스를 마시는 게 여름을 견뎌내는 내 루틴이었는데, 올여름엔 옵션이 하나 늘었다. 

“하이볼 한 잔 주세요!”



*8월까지 다양한 주제로 하이볼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번 여름엔 베버리진과 함께 각자의 취향을 발견해 보세요. 하이볼 콘텐츠는 <임바이브>와 함께합니다.

EDIT. 홍수연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