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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상생하며 장생하는 법

<장생건강원> 서정현 오너 바텐더


이름 따라 산다는 말이 있다. 바 보다 한약방으로 먼저 태어난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때부터 어쩌면 정해진 숙명이었을까. 강남 영동시장 내에 위치한 <장생건강원>은 노부부의 한약방이 그러했듯,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고, 영동시장의 상인들과 어울려 놀며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상생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 안에 바를 오픈한 계기는. 

<장생건강원>을 준비하던 당시 특급 호텔 바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현재도 낮에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제이제이마호니스>를 비롯해 식음업장 음료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럭셔리한 문화를 펼쳐내는 데 재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좀 더 삶의 때가 묻은 사람들과 호흡하고 싶었다. ‘전통주 홍보대사’로서의 바는 어때야 할까라는 고민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처음 바를 시작할 때 상인들과의 관계는 괜찮았나.

정말 안 좋았다. ‘저희 바 합니다’라고 했을 때 대부분 유흥업소로 오해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유재석 씨가 이 시장에 등장하고 나서야 저희에 대한 모든 평판이 달라졌다(웃음).


4년 전, 그러니까 바가 생기고 2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유명 연예인의 힘을 빌었다고 말하지만, 그 효과를 톡톡이 볼 수 있었던 건 그간 <장생건강원>만의 방법으로 분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 초입 세로로 난 골목에만 약간의 술집이 있을 뿐, 바가 위치한 골목은 말 그대로 완전한 시장이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눈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선구자는 본디 외로운 법. 개척을 위해 그들이 빼내든 건 날을 세운 칼이 아니라 따뜻한 손이었다. 상인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며, 지금은 바의 얼굴이 된 ‘마켓 컬래버레이션 칵테일’의 역사를 천천히 써내려 갔다.


마켓 컬래버레이션 칵테일의 시작도 쉽지 않았겠다. 

육가공 및 한우오마카세 전문점인 <육덕등심>과 협업한 ‘육회 칵테일’, ‘금강유통’과 만든 ‘삼계탕’, <양양 불 떡볶이>의 소스를 활용한 ‘떡볶이’ 등 지금까지 50개의 칵테일을 만들었더라. 모든 메뉴는 단순히 재료만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상인 분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최종 확인을 거쳐 손님들에게 선보인다. 세 번째까지가 정말 힘들었다. 결과물 레퍼런스 등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말로 설득하는 과정이었으니까.


대표적인 마켓 컬래버레이션 칵테일을 소개한다면. 

여름이니까 ‘냉면’을 추천한다. 한산소곡주 천상문을 베이스로 시장 내 유명한 분식집 <한양 김밥>의 냉면 육수를 활용한 칵테일이다. 육수에 정말 다양한 과일을 사용해서 상큼하게 연출되는 마지막 맛이 정말 좋았다. 원래는 이 육수를 살균 과정을 거치고 코디얼로 만들어 썼는데, 요즘은 그 프레시함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그날그날 받아 다 쓴다.

음식의 맛을 칵테일에 담아낼 때 신경쓰는 점은.

칵테일에 담긴 여러 맛의 레이어 중 하나를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하거나, 아로마적 터치, 가니시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전체의 맛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김밥 칵테일’은 시금치와 당근 오이를 갈아서 그 향을 칵테일 안에 녹여냄으로써 ‘진짜 김밥’ 맛이 나게끔 만든다.


영동 시장 안에서 재료를 찾는 것에 한계를 느끼지는 않나. 

한계라기 보다는, 영동 시장을 벗어나 대한민국 구석구석으로 로컬의 개념을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제가 가진 작은 영향력으로 각 지역 고유의 성질과 문화를 잘 녹여낸 칵테일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게 현재 목표다. 담양의 떡갈비, 보성의 녹차처럼 그 지역하면 떠오르는 특산물이나 향토 음식을 활용해 현대적인 칵테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향후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그 과정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완성작 하나를 소개한다면.

‘안동 찜닭’. 단지 안에 담긴 벅 스타일의 칵테일이다. 안동 소주 대표님이 선택한 아이템으로, 안동 구시장 내 찜닭 거리에 있는 찜닭집과 협업한 칵테일이다. 그곳에서 소스를 포함한 찜닭 구성 요소를 직송 받는다. 뼈, 소스, 스모크한 맛을 입힌 마늘 등을 넣어 끓여서 코디얼을 만들고, 직접 만든 진저비어를 배합한다. 집집마다 맛이 좀 다른데, 이 집의 찜닭은 좀 매운 편이라 그 포인트를 살리고 싶었다. 완성된 찜닭 한 점을 같이 낸다.


실재로 냉면을 올리고, 곁들여내는 등 가니시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처음에는 칵테일의 맛을 ‘반증’하기 위한 용도였다. 어떤 느낌으로 칵테일을 만들었는 지 직관적인 힌트를 주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한국의 주안상 느낌으로 가니시를 최대한 연출하려고 하고 있다. 성질이 본질적으로 다른 음료와 음식의 간극을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적인 칵테일 트렌드도 가니시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잘 맞물린 것 같다.

얼마전 6주년을 맞이했다. 소감이 어떤가. 

정말 바쁘게 보내왔는데, ‘안정기’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이거 딱 장생 스타일이네’, ‘딱 장생 직원답네’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비로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앗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이번 6주년은 특히 많이 울컥했다. 감사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장사가 잘 되는 편인데(웃음), 말로만 감사를 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손님들에게 그 감사함을 돌려줄 수 있을 지, 상생하는 상인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 아쉬움을 채찍질 삼아 발전해 나가고자 한다.


'장생스러운’ 직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나. 

올해 열린 ‘화요 칵테일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최승민 바텐더를 두고 심사위원분들이 “쟤는 앞치마 없이 올라와도 장생인 줄 알겠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에너지가 다르다고들 한다.


애초에 그런 캐릭터의 바텐더들을 뽑는건가. 

진짜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닮아가는 것 같다. 조금 민망하지만, 그만큼 팀원들이 나를 존중하고 따르기 때문이 아닐까.


바 신에서 어떤 역할을 해 나가고 싶은가. 

선구자, 최초… 이런 타이틀에 사실 욕심은 없는데, 어찌됐든 남들이 안 걸은 길을 걷다 보니 조금 부담이 된다. 그런 와중에도 목표는 하나다. ‘이건 서정현 아니면 안돼’라는 음료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싶다.


오너들의 명확한 철학과 방향성을 팀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공유하나. <장생건강원>은 어떤 바로 나아가고 싶은가.

‘대체 불가능한 한국적인 바’.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사내 교육할 때 강조하고 대외적으로 늘 우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단순히 전통주를 칵테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잔에 진짜 로컬을 담아 나가고 싶다.


서정현 오너 바텐더가 6년이 지나서야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장생'에서 가로 획을 하나 지우면 '상생'이 되고, '상생'에서 다시 가로 획을 추가하면 '장생'이 된다는 것. 이는 비단 글자놀이가 아닌, <장생건강원>이 지켜나갈 상생의 가치가 서로의 존재를 키우고 발전시키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으로도 <장생건강원>은 이름이 품은 의미처럼, 지역과 사람 그리고 전통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길을 걸으며, 그 과정 속에서 모두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장생'의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