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당>, <참>, 그리고 <제스트>를 거쳤다. 각각 스타일이 다른데 어떤 점을 배웠나.
첫 시작인 <주신당>은 오픈 준비 때부터 합류해 공간 기획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업장을 운영하다 보니 장지호 대표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참>에 놀러갔다가 임병진 대표에게 간택 당해서(웃음) 파트타이머로 시작했다. 당시 손을 다친 상태였는데 바텐더 사이에서 그곳은 아이돌 같은 존재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음료 메이킹부터 서비스까지, 바텐더로서의 기반을 다진 곳이다. 그러다 일명 ‘홀수 연차의 고비’가 찾아왔다. 손님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줘도, <참>의 후광 안에 있음을 스스로 알았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 임병진 대표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고 <제스트>로 옮겼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명확한 주제와 더불어 인테리어, 칵테일 등 당시엔 모든 것이 새로운 바였다. 또 직원 체계부터 운영까지 시스템화 되어 있어서 그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름 굵직한 바를 거친 만큼 <정온>을 오픈할 때 압박도 있었을 것 같다.
없다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제스트> 퇴직 후, 바텐더를 그만하겠다고 한 차례 선언(?)도 했던지라 압박이 두배였다. 활기 넘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 앞만 보고 달리다 제 풀에 꺾인 것이다. 지금은 안다. 힘들면 살짝 천천히 가도 된다는 것을.
바텐더를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돌린 계기가 있나.
회사 생활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낮에 생활하고, 퇴근 후 누군가와 저녁을 함께 먹고… 그런 게 고팠던 것 같다. 바텐더가 주변에 사람은 정말 많지만 외로운 직업이라고 늘 생각했으니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정작 내가 친구를 찾을 땐 곁에 없는 느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야겠더라. 결정적으로, <제스트>가 월드 50 베스트 바 순위에 처음 입성했을 때 집에서 라이브를 보고 있었다. 김도형 대표가 아내 분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한 참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지쳤다고, 원하는 삶이 있다고 가진 걸 내려놓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잘 풀어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칭얼거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악물고, 다시 시작한 게 <정온>이다.
이 악물고 시작한 바. 어떤 곳을 만들고 싶었나.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충족시키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문정동에 걸맞은 바를 만드는 게 당연했다. 바 호핑을 하러 오는 동네가 아니지 않나.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은 편안한 바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무조건 지상에 위치해야 했고, 아늑한 무드를 줄 수 있는 주광색 조명에 샌드톤과 우드톤을 인테리어에 활용했다.
이 공간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내가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입구 전면이 큰 창으로 이루어진 것. 계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풍경이 곧 인테리어가 된다.
앞만 보고 달리다 제풀에 꺾였던 그가 돌아온 곳은,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는 변방이다. 그는 이 공간에서 '창밖의 계절'을 가장 사랑한다고 했다. 벚꽃이 날리고, 녹음이 짙어지고, 낙엽이 지고, 눈이 쌓이는 풍경. 어쩌면 그가 이 악물고 다시 돌아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스스로가 가장 먼저 위로받을 수 있는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너무 뜨거울 땐 차갑게, 너무 차가울 땐 뜨겁게 삶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곳, <정온定溫>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