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에서 바를 운영하며 어려움은 없나.
다행히 생각보다 큰 어려움은 없다. 은평구에는 <기슭>이 오픈하기 전부터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 같은 바도 있고, 우후죽순 늘지는 않지만 새로운 바들도 꾸준히 생기고 있다. 그래도 상권이 형성될 것 같진 않지만.(웃음) 초반엔 손님의 70% 정도가 먼 곳에서 찾아왔지만, 지금은 절반이 동네 손님이다. 혼자 왔다가 친구나 연인이 되어 나가기도 하고, 결혼한 커플도 있다. 이곳에서 작은 역사들이 생겨난다. 또 은근히 연신내에 사는 바텐더들이 많고, 새벽에는 택시 타면 종로에서 연신내가 금방이라, 많이들 찾아와 주신다.
바 문화의 특성을 감안해도, 저녁 8시에 오픈하고 새벽 5시에 마감하는 건 상당히 늦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코로나 이후 전반적으로 바들의 영업 시간이 짧아졌다. 그만큼 밤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도 줄었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예전보다 재미가 덜하지 않나? 늦게까지 하면 누군가는 흥미로운 마음으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현실적으로 이 동네엔 걸을 만한 거리나 구경할 곳이 많지 않아서, 저녁을 먹고 늦게 한잔하러 오기 좋다. 그래서 아예 늦게 열고 늦게 닫기로 했다. 다행히 새벽 5시까지 늘 손님이 있다. 다른 바의 바텐더들이 영업 끝나고 회식하러도 많이 온다.
메뉴판에 ‘악수/포옹/입맞춤’ 카테고리가 인상적이다.
사람이 친해지는 스킨십 단계를 위트 있게 풀어봤다. ‘악수’는 처음 방문한 분들에게 건네는 인사로, ‘연서시장 로망스’, ‘북한산’, ‘불광 2024 F/W’처럼 동네를 담은 칵테일들이 있다.
‘포옹’은 70~90년대 디스코 시절의 파티 드링크를 기슭 스타일로 재해석한 메뉴, ‘입맞춤’은 고도수의 슈터 칵테일 카테고리다. 네그로니, 올드패션드, 마티니 같은 클래식 칵테일도 슈터화했다.
그 시절 파티 드링크라면 어떤 것들인가.
지금은 잘 주문하지 않는 피냐콜라다나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같은 칵테일이다. 자극적인 네이밍을 사용하고, 시럽이나 크림이 많이 들어가던 시절이라, 음료씬에서는 ‘암흑기’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슭>에서는 요즘 입맛에 맞게 비주얼과 플레이버를 새롭게 디벨롭했다. 피냐콜라다를 떠올리면 여름, 휴가, 풀의 싱그러움이 연상되지만, 가을/겨울에 먹는 피냐콜라다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재해석하고,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는 스모키한 스타일의 티를 우려서 50cm짜리 긴 잔에 서브한다. 독특한 잔만으로도 즐겁고, 손님들이 셀카도 많이 찍는다.
시그니처 칵테일을 소개해 달라.
입맞춤 카테고리에 있는 슈터 칵테일들과 악수 카테고리의 ‘북한산’을 소개하고 싶다. 슈터 라인업은 올드패션드, 네그로니, 더티 마티니, 솔티드 블로우 잡, 하드 스타트, 포드 앤 페라리, 플랫라이너까지 7종이다. 그중 ‘하드 스타트’는 하루의 챌린지를 이겨내고 바에 온 손님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칵테일이다. 특히 베이스로 사용하는 페르넷 브랑카는 ‘바텐더 사이의 시크릿 핸드셰이크’라는 의미가 있어, 바텐더 손님에게 종종 웰컴주로 내기도 한다. ‘플랫라이너’는 데킬라와 삼부카라는 리큐르 사이를 타바스코가 막고 있는 모양으로 층층이 쌓여있는데, 바이탈 사인이 멈춘 모습을 형성화했다. 긍정적인 의미로, ‘죽여주게 맛있는 칵테일’이랄까. 마실수록 눈이 충혈될 만큼 강렬하다.
‘북한산’은 밤의 산에서 느낄 수 있는 향과 바람에서 영감을 얻었다. 야생의 느낌을 내기 위해 압생트와 아마로로 산의 허브와 흙내음을 표현했다. 특히 압생트를 상징하는 초록색을 민트 오일로 강조해, 화려한 수묵화 같은 이미지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