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한 가지에

빠진 사람들


Vol.2 <로스트앤파운드> 이규성 대표


한국 최고의 바를 묻는다면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각자의 바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버번 위스키 바를 묻는다면 현존하는 정답은 단 한 곳. 바로, 을지로의 <로스트앤파운드>다. 만렙을 향해 달려가는 스테이지에서 이규성 대표가 퀘스트를 깰 때마다 손님의 취향이 절로 깊어지는 곳. 덕질은, 이렇게나 이롭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손으로 거칠게 써내린 글자 ‘LOST&FOUND’가 새겨진 철재문. 흔히 버번 위스키하면 떠오르는 ‘터프함’ 그대로의 이미지를 표출하는 분위기에 수긍하는 찰나, 문을 열면 반전의 공간이 나타난다. 동물의 머리 장식이라도 달려 있을 것 같았던 공간에는 포스터와 액자, 아트 토이, LP판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잠시 허리 건강과의 안녕을 고하고 늘어지듯 앉아있고 싶은 소파에 작은 디제잉 부스까지. 바 보다는 누군가의 아지트 그 자체다. 주인공은 자신을 맥시멀리스트라 소개하는 이규성 대표. 취향 부자인 그가 술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취향, 버번 위스키를 올 곧게 밀어 붙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었나. 

궁극적으로 제가 즐거운 공간, ‘제 방’ 같은 곳을 만들고 싶었다. 제가 편한 의자, 제가 좋아하는 술과 문화를 이곳에 모두 쏟아부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소품 하나하나가 손님들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바 테이블이 없다. 

바 업계 경험이 없다 보니 생긴 구조다. 처음엔 혼자 오신 손님들이 어색해하셔서 ‘아차’ 싶기도 했다. 한국의 바 문화가 바텐더와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텐더 때문에 바를 찾기도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손님과 관계를 맺는 데 집중하며 이곳만의 매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바 테이블이 없는 대신 직접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나눈다.


손님들과의 소통이 ‘로스트앤파운드 버번 커뮤니티’로 이어졌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커뮤니티다. ‘버번 위스키에 미친 사람들’, 즉 열정적인 단골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술들을 나눠 마시기 시작했는데, 영업일에 함께 즐기기엔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아예 날을 잡아 한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열고 있다. 각자 재미있는 병을 가져와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음회 같은 형태다. 위스키 신은 유독 ‘공유 문화’가 강한데, 그 바이브가 맞는 분들을 제가 알아서 초대하고 있다.


왜 버번 위스키였나. 

맛있다.(웃음) 본래 요리사였는데, 일을 마치고 한 잔씩 마시는 시간을 즐겼다. 다른 술들은 한 병을 오픈하면 같이 마실 사람이 필요한 반면, 위스키는 혼자 마셔도 되는 분위기가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마 처음으로 마셨던 게 메이커스 마크였을 것이다. 블렌디드 위스키에서는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고, 싱글 몰트 위스키는 어렵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피트 위스키의 병원 향은 시간이 지나도 즐기지 못할 것 같은, 마치 홍어 같은 존재였달까. 그런데 버번 위스키에서는 체리, 초콜릿, 견과류, 바닐라, 브라운 슈가 등 맛의 기본 골자에서 내가 알던 노트들이 나오는 게 재미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디저트가 당기고, 자기 전에 단 거 먹으면 기분 좋지 않나. 마치 어른이 돼서 먹는 디저트 같았다.


마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게까지 오픈한 계기는 무엇인가. 

버번 위스키가 맛있는 걸 한국에서 제가 처음 깨달은 사람도 아닐텐데, 왜 없을까라는 의문이 ‘없으면 내가 하지’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짧았다. 수요가 없으니 수입이 되지 않고, 수입이 되지 않으니 찾는 사람도 없는 것인데 한국 시장을 몰라서 용감했달까. 6병 가져다 놓고 버번 바라고 차렸으니 말 다했다.(웃음) 반면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미국 트렌드에 대해서는 좀 더 기민했다. 모두가 무시하던 나파밸리를 미국이 주도해서 하나의 와인 장르가 됐듯이, 버번 위스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요리학교 동기들 사이에서는 졸업하면 미쉐린 레스토랑 등 파인 다이닝 셰프 아래에서 수학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저는 제 자신이 편안하게 먹지 못하는 음식을 요리하는 것에 큰 갭을 느꼈다. 술도 마찬가지다. 제가 즐기고 마시는 것을 손님들에게 권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버번 위스키가 아이템이 됐다.


2018년 오픈 당시 <로스트앤파운드>는 이규성 대표 혼자 ‘버번 바’임을 주창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을지로에 왔다가 들르는 바 정도. 이 대표는 버번 위스키가 무엇인지 묻는 이조차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 기류가 전환점을 맞이한 건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되던 시점. 위스키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정점을 향해가던 시기, 각자 어디선가 연마하고 나타난 손님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고, 추천을 넘어 제품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이곳의 프라이빗 셀렉션의 시작이었던 메이커스 마크 프라이빗 배럴이 도착한 시점이기도 하다.

2021년 선보인 메이커스 마크 프라이빗 배럴이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아마 국내 최초의 버번 위스키 프라이빗 배럴이 아니었나 싶다. 바를 오픈한 당시 제일 꿈꾸던 것이 배럴 픽, 즉 프라이빗 배럴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뤘다. 바의 규모나 매출을 생각하면 얻기 어려운 기회인데, 워낙 한국에 없는 장르를 하다보니 그 기회가 제 앞에 떨어졌던 것 같다. 과연 이곳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소비를 일으킬 수 있을 지 두려움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한달만에 보틀 판매를 중지할 만큼 관심을 받았다. 바에 어느 정도 수량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현재 30병 정도 남아있다.


왜 그렇게까지 프라이빗 배럴을 열망했나. 

수입되는 위스키를 부지런히 업데이트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게만의, 여기서 밖에 마실 수 없는 것으로 브랜딩하고 싶었다.


또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버번 위스키는 무엇이 있나. 

와일드 터키, 메이커스 마크, 데틀링, 일라이저 크레이크 배럴프루프(이하 ECBP) 프라이빗 배럴. ‘로스트앤파운드 샘플러’를 주문하면 15ml 용량으로 한 잔씩 제공한다.


데틀링은 정말 생소하다. 소개 부탁한다.  

당연하다.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다. 메이커스 마크 프라이빗 배럴을 진행한 이후 미국도, 한국도 더이상 프라이빗 배럴을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스키 시장이 바빠졌다. 2년 넘게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던 중 수입사의 제안으로 데틀링을 만났다. 처음에는 ‘이런 위스키까지?’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던 중 메이커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됐다. 대형 산업 주도로 흐르고 있는 미국 켄터키 위스키 시장 완전히 반대 급부의 사람이었다. 소규모 생산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잘 인지하고 디테일들을 말하는데 그 철학이 너무 멋졌다. 예를 들어 매시빌(위스키 제조에 사용되는 곡물 비율)에 오트가 있다. 양조자가 농부 집안 출신이라 곡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가능한 일이다. 플레이버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오일로 살아남아 음용 시 굉장히 부드러운 마우스 휠로 발현된다. 5년 숙성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적인 포인트였고, 샘플을 시음하자마자 계약을 맺었다. 배럴 픽 방식도 독특하다. 워낙 작은 양조장이다 보니, 배럴 넘버가 적혀 있으면 초창기 제품이라는 게 티가 난다는 이유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 외 도수도, 그 어떤 것도. 그야말로 블라인드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인데 또 그런면이 이 덕후의 마음을 자극하더라.(웃음)

프라이빗 배럴을 선택할 때 마음을 흔드는 지점들은 어떤 것인가. 

솔직히 샘플 중에 맛이 없는 건 거의 없다. 그 사이에서 저는 단맛이 잘 묻어나고 자극적이지 않고 음용성이 좋은 것들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ECBP는 도수가 기본 60도를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제가 선택한 건 59도더라. 소비자들 중에 도수가 높으면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브랜드의 프라이빗 배럴 몇 가지가 동시에 출시됐을 때, 특정 보틀의 도수가 높으면 그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지만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물을 타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지, 도수는 중요하지 않다.


증류소별로 큐레이션 된 샘플러 메뉴가 독특하다. 이런 방식으로 구성한 이유는. 

거의 병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만들고 있다. 손님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지점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믹터스’를 맛있게 마신 손님이 다음에 뭘 마셔봐야 할 지 고민할 때 같은 증류소의 다른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의 샘플러로 맛보며 자신의 취향을 더 깊게 탐험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게임처럼 하나씩 격파하며 레벨업하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또, 위스키 보틀을 구매하기 전 마셔보고 결정할 수 있는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주고 싶었다.


초심자들을 위한 샘플러를 추천해달라. 

높은 도수도 괜찮다면 앞서 말한 ‘로스트앤파운드 샘플러’를 추천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지&리치 샘플러(Easy&Rich)’. 버번 위스키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포인트를 보면 흔히 아세톤향을 필두로 입 안을 치는 맛인데, 이 샘플러는 10년 숙성, 도수 45도 언저리로 호감을 가질만한 리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버번 위스키 기본형의 다음 단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0년은 버번 위스키에서는 고숙성에 속한다. 매력은 무엇인가. 

사람이랑 비슷하다. 어릴 때는 할 말이 많은데, 나이 들면 딱 할 말만 한다. 거친 면들이 잠잠해지면서 원래 알던 모습의 성숙한 버전을 감상할 수 있다. 혹은 기본형에서 볼 수 없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도 있다.

요즘 최애 버번 위스키는. 

최애라기 보다는, 가격이나 희소성의 장벽이 없이 평생 마실 수 있다면 믹터스 10년. 마시기 편안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버번의 노트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 10년 숙성에서 오는 복합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까지 갖추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막연하게나마 ‘진심이 있는 수입사’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데틀링처럼 코어 제품도 없이 오로지 프라이빗 배럴로 승부하는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오는 모험을 한 수입사 대표님처럼, 저도 열정을 가지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를 한국 시장에 소개하고 싶다. 또한 지금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외국 팟캐스트처럼 깊이 있고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며 '덕후'들과 계속 소통하고 싶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