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즐거움이 있는 공간

마쥬 MAJEUX

지난 5월, ‘SHOUT OUT TO MY BAR’라는 이름으로 팔로워들의 단골 바를 소개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중 한 팔로워가 “문정 독거 청년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공간입니다”라는 위트 있는 소개와 함께 추천한 곳은 바로 <마쥬>. 바 상권으로는 낯설디 낯선 동네에서 조용히 이름을 알리며 단골을 만들고 있는 그 바가 궁금해 문정동으로 향했다.

문턱을 낮추고 바 문화를 하나의 놀이처럼

 

평일 오후, 지하철에서 내려 문정역 4번 출구로 나가면 저마다의 오후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그 사이를 지나 <마쥬>를 향해 걷다 보니, 지식산업단지와 오피스텔이 즐비한 이 동네의 풍경이 문정동을 선택한 이유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만든다. 벌써 바텐더가 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는 유정훈 바텐더. 여러 바를 거치며 일했지만, 처음부터 내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는 없었다고. 결심이 선 건 퇴사 후 지방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간 치킨집에서 가게 안을 꽉 채운 동네 어르신들을 봤을 때다. 문득 ‘이분들은 어쩌면 진토닉을 평생 마셔본 적도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텐더로서 이름을 알리고, 상을 받는 일보다, 바를 즐기고 칵테일을 마시는 경험의 가치를 훨씬 더 폭 넓게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칵테일 다이닝 바 <라이언하트>를 공동 대표로 운영했고, <마쥬>는 그의 취향을 온전히 담아낸 두 번째 공간이다. 바의 이름은 호텔 바에 근무하던 시절, 한 프랑스인 손님과의 대화에서 착안했다. “바텐더와 대화하면서 음료를 추천받고 마시는 게 꼭 놀이 같다!”라고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가 말한 불어 표현이 ‘Ma jeux(나의 놀이)’였고, 바에서의 시간이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지기를, 그리고 바텐더와 손님이 마주한다는 의미를 담아 <마쥬>로 지었다.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핫플레이스 대신 문정동을 선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세대 불문하고 직장인들이 편히 머무를 수 있는 바가 되고 싶었기 때문.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청년 1인 가구도 많아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었다. <마쥬>는 1층에 자리해 커다란 통창과 따뜻한 질감의 목재가 어우러져 바깥의 빛을 그대로 들여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바의 문턱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우리가 찾았을 때 종일 부슬비가 내리던 날이었지만, 문을 열자마자 환한 기운이 가득 찬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칵테일로 맛보는 송파구 맛집


시그니처 칵테일은 바텐더가 각자의 개성으로 재료를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 잔이라는 바텐더. <마쥬>에서는 평소 미식 생활을 즐기는 그가 자주 가는 송파구 맛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칵테일을 만나볼 수 있다. 칵테일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좋아하는 맛집도 알리고, 지역 상권과 상생하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옥돌현옥>의 평양냉면에서 착안한 ‘옥돌’은 보드카에 파, 참외, 청양고추, 무 등을 넣어 수비드 방식으로 인퓨징한 뒤, 육수와 다시마 식초를 더하고 메밀 폼을 얹어 완성한다. 평양냉면과 술을 한입에 머금는 듯한 맛으로 ‘평냉에 소주’ 조합을 좋아하는 이들을 저격할 한 잔. 특히 호불호가 강한 오이 대신 비슷한 계열의 참외를 사용한 센스가 돋보인다. 함께 낸 수육이 유달리 부드러워 어디서 수급한 것인지 물었는데, 직접 만들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사카바 게라게라>는 사케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한 삼전동 맛집이다. 갈 때마다 일본 술에 대한 지식을 얻어먹고 오는 그곳을 떠올리며 만든 칵테일이 ‘게라게라’. 사케를 베이스로 리버스 마티니를 변형해 만들었는데, 버무스 대신 사케에 가쓰오부시, 유자 껍질, 후추, 시소, 백 된장을 수비드한 뒤, 일본 진을 더해 완성한다. 가니시로는 올리브 대신 매실액에 절인 방울토마토를 담아내며, 실제 <사카바 게라게라>에서 사용하는 사케잔과 동일한 잔에 제공한다. 처음 입에 닿았을 땐 향긋함이, 입안에 머금고 있을 땐 쌉쌀함이, 목 넘김 후에는 은은한 단맛이 남는 맛의 변주에 놀라다 보면, 어느새 잔은 비어 있다.

몰랐던 취향을 발견해 줄 바


“술은 다양한 식감을 즐기기 어렵다는 점이 아쉬워요.” 그래서 유정훈 바텐더는 <마쥬>의 기본 안주로 바삭한 베이글 칩을 낸다. 바로 옆에 있는 <델랑시 베이글>의 제품이다. 한창 오픈을 준비할 당시, 새벽 4시부터 출근해 빵을 굽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기본에 충실한 그 정직함에 반했고, 여느 유명 베이글집보다도 훌륭한 맛에 두 번 반해 손님들과도 나누고 싶어졌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단골 젤라또 가게의 제품을 ‘오늘의 젤라또’라는 이름으로 메뉴에 올리기도 한다.

바 소개만큼이나 송파구 맛집 이야기에 진심을 쏟아놓는 끝에 영업 시간이 가까워지자 백 바 한가운데에 빔프로젝터가 켜졌다. 공간을 기획할 때부터 백 바 정중앙에는 진열장을 두지 않고 빈 벽으로 남겨두었다. 주로 음악이나 영화가 상영되지만, 손님이 원하는 영상이나 스포츠 경기를 틀어 주는 경우도 있다. 내부 규모가 작아 혹시라도 답답하게 느껴질까 봐 시각적인 환기를 주고자 설치했는데, 손님들과의 대화 주제가 되거나, 바빠서 바로 응대가 어려울 때 손님들이 잠시 시선을 머물 수 있는 고마운 ‘직원’이 되었다

공간, 칵테일, 안주까지. 유정훈 바텐더의 섬세한 배려는 새로움을 안겨 주기보다는, 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취향을 발견해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변 상권과 상생하며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것 역시, 바에 방문하는 게 밥을 먹고 카페를 가듯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미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EDIT. 홍수연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