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OLD SOUL,

NEW SPIRIT

Vol.2 유행곡 말고 히트곡. 오래가는 새로움을 만든다는 것



<믹솔로지> 김봉하・김현 오너 바텐더


직원에게는 대표님, 손님들에게는 바텐더, 그리고 수많은 바텐더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린다. 그들에게서 칵테일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하고 나니 그 이상의 가르침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예를 들면 바란, 바텐더란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 지. 그리고 예상하건대 누구도 쉬이 들려주지 않는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으리라.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어땠나.


김현 김봉하 대표가 운영하던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바텐더를 시작한지 6-7년쯤 됐을 때인데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그를 만나면서 제2의 바텐더 생활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교육 내용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정말 즐거웠다.


김봉하 과제를 해오는 당시의 현 대표는 늘 놀라웠다. 미적 감각과 창의성,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물을 가져왔다. 



바텐더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봉하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IMF를 겪었다. 선배들의 실직을 지켜보며 내가 아무리 이 일에 매진해도 ‘이게 내 미래구나’싶었다. 그럴 바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하자 싶었다. 술과 대화를 즐기는 취미를 살려 바를 찾아가면서 시작됐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집안, 그것도 시골 어르신들에게 바텐더는 그저 ‘술집 보이’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다.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 분야의 공력을 쌓아 책을 쓰고, 교육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김현 조각을 전공했다. 미술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 둘의 유사성에 빠져들었다. 창작, 그리고 거기서 오는 만족감. 한창 창작욕이 불타오를 때라 ‘이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두 사람 모두 바텐더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만큼 누군가에게는 바텐더를 꿈꾸게 하는 존재였을 듯싶다. 어떤가. 바텐더는 미래를 걸만한 직업인가. 


김봉하 사실 오너 바텐더가 되지 않으면 바텐더로서의 수명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지금은 많이 늘어났는데, 보통 40대에 접어들면 많은 고민을 한다. 오너 바텐더로서 자리 잡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고, 잔인하지만 한 번의 실패로 업계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바를 오픈하려는 젊은 바텐더들의 안목이 점점 높아져서 더 그렇다. 청담만 예로 들자면 <믹솔로지>는 물론이고, <르챔버>, <앨리스>, <제스트> 등 이름 굵직한 바를 처음부터 목표로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일본을 보면 답이 보인다. 일본엔 혼자 운영하는 바가 많다. 정말 바가 좋다면, 바텐더라는 직업이 좋다면 현실적인 바의 규모,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서비스가 무엇이고 그 안에서 잘할 수 있는 독보적인 콘텐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능력이 될 수록, 밖에서 인정받을 수록 많은 유혹이 있을 텐데 그 바람이 스쳐 지나간 후에 어떻게 감당할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오픈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기도 한지.


김현 그때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이전보다는 안정되고 다듬어진 게 사실이다. 돌아가고 싶지도, 되돌리고 싶은 것도 없다. 그 과정들이 없었으면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테니까. 


김봉하 재미있는 건, 우리는 정말 처음부터 잘 될 줄 알았다(웃음). 저는 바 교육자와 컨설턴트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생각이었고 바 오픈은 생각한 적이 없어 모아둔 돈도 없었다. 둘 다 소위 말하는 ‘영끌’로 시작한 업장인데, 주변의 축하 차 방문이 끝나고 오픈 3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냉혹한 현실이 찾아오더라.



그럼에도 <믹솔로지>를 오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김현 다른 바에 일하면서 갈증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연 재료 각각의 특성을 잘 융합해서 좋은 결과물로 손님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오픈 2-3년차부터 직접 증류를 하고, 재료의 에센스를 뽑아내는 작은 실험실을 만든 이유다. 한국에선 최초였기 때문에 설비 업체를 찾는 데만 많은 시간을 쏟았다.


김봉하 당시 어센틱 Authentic 칵테일이 인기있던 때로, ‘시그너처 칵테일’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바마다 1-2가지 정도를 갖췄을까.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 메뉴를 시그너처 칵테일로 구축해 간판 메뉴로 내걸고 <믹솔로지>만의 독보적인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었다. 



각자 시그너처 메뉴 한 가지씩 소개해달라.

 

김현 ‘마누카 드리즐’이 요즘 특히 애착이 가는 메뉴다. 바 <케이지> 시절부터 발전시켜 온 칵테일로 위스키, 마누카 꿀, 달걀, 스타 아니스 등의 재료 조합 자체를 사람들이 신선해한다. 단맛을 싫어하는 손님도 좋아하고 새로워 할 만큼 세분화된 단맛의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김봉하 ‘허브 김렛’. 레시피는 간결하지만 오픈 때부터 추구해 온 신선한 재료에서 느껴지는 에센스를 뽑아내는 테크닉의 집합체다. 굉장히 오래 걸렸다. 흙내음을 연상하는 트러플 오일은 오픈 후 막바지에 추가됐다. 마땅한 재료를 떠올리지 못하던 때, 개복숭아에 중화된 트러플 오일을 먹었는데 ‘이거다’ 싶었다. 



두 사람이 꼽은 메뉴는 모두 나이가 10살 이상이다. <믹솔로지> 대부분의 메뉴가 오픈 때부터 유지해온 것이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변화에 대한 압박감이 없지 않을텐데도 두 사람은 묵묵히, 조금씩 메뉴들을 다듬으며 지켜왔다. 음악 차트 1위에 순식간에 올라갔다 사라지는 유행곡이 있는 반면,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도 있어야 신 Scene이 풍요로운 법이다. <믹솔로지>는 그렇게, 바를 사랑하는 사람들 인생의 장면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오래 사랑받는 메뉴를 만드는 듯하다. 


김봉하 우리의 시그너처 메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믹솔로지>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시그너처다. 우리만의 색에 빠지지 않으려고 많이 절제한다. 전부 새롭게 교체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손님들을 생각하면 유지 해야겠더라. 저와 현 대표의 욕심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칵테일이 언젠가 ‘모던 클래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대중화되어 바도, 소비자도 따라할 정도의 레시피가 됐을 때 알고 보면 그 출발점이 <믹솔로지>가 될 수 있도록. 



메뉴 외 <믹솔로지>만의 콘텐츠가 있다면.


김현 절반 이상의 손님이 BGM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한다. 검증된 우리만의 콘텐츠인 듯하다. 


김봉하 가장 좋은 소리는 상대와의 기분 좋은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 대화가 비는 사이를 채우자는 의도였다. ‘귀도 즐거워야겠다’는 생각에 한 달에 1-2곡 정도 직접 믹싱해서 추가하고 있다. 칵테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만의 콘셉트를 유지하되 대중성을 늘 염두에 둔다.   



청담동에서 드물게 커버차지가 없는 점도 눈에 띈다.


김봉하 <믹솔로지>는 미쉐린에 비유하면 ‘빕 그루망’ 같은 바다(웃음). 대외적으로 늘 ‘건전한 음주 문화, 칵테일 시장과 바 문화의 대중적 확산’을 이야기하는데 청담동이라는 동네에 맞춰 커버 차지를 부과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 여긴다. 커버 차지를 받으려면 손님이 앉아서 나갈 때가지 말 그대로 ‘탈탈 털어’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금액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받지 않는 게 맞다. 

지난 10여 년 간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나. 


김봉하 모든 바가 코로나 시기를 꼽지 않을까. 이제 막 입소문을 타고 상승가도를 달리던 중이라 더 힘들었다. 매출 0원을 기록한 적도 있으니까. 그래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버텼다. 그래도 억울함을 삼키고 지킬 것을 지키며 직원들 급여를 밀리지 않았다는 우리 둘만의 자부심은 남았다. 



그 시기에 칵테일 젤리, 초콜릿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는데. 


김현 멘탈 관리용이었다(웃음). 직원들이 출근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이 미안했다.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했던 것들이다. 



요즘 고민은 무엇인가.

 

김봉하 그간 둘이서 바 안을 지키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는데, 요즘은 직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누구나 주인공인 바텐더가 되고 싶지 않나. 생각처럼 쉽지 않고 누가 밀어낸 것도 아닌데 서운한 마음이 든다. 바 밖으로 나오면 할 게 없어서 요즘도 방황중이다(웃음). 


김현 처음엔 정말 뭘 해야될 지 모르겠더라. 그래도 요즘은 직원들 백업해주는 재미에 빠져있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뭐가 필요한 지 물었는데 당연히 직원들은 말이 없다. 함께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시스템적으로, 기물적으로 불편한 것들을 발견하고 바꾼다. 너무 익숙해서 불편한지조차 몰랐던 직원들이 좋아하는 걸 볼 때 희열을 느낀다. 


김봉하 현 대표와 <믹솔로지>라는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오픈 당시에는 굉장히 트렌디한 업장이었고, 손님 뿐 아니라 바텐더 입장에서도 볼거리도 배울 거리도 많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바들이 그 이상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시간이 지나면 콘텐츠를 더 단단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가 딱 그런 타이밍에 놓여있는 듯하다. 



어떤 바로 기억되고 싶냐는 마지막 물음에 두 사람은 그저 ‘믹솔로지’라고 대답했다. 오랜 고민은 자기 안에서 끝내고 손님의 바 테이블에는 무결한 한 잔을 올려온 사람들답다. 해석해보건데, 믹솔로지의 동의어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대체 불가능함이 아닐지.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