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변방의 바 


Vol.4 <닙스> 구상옥 오너 바텐더


판교. 날카로운 획으로만 그어진 글자처럼, IT의 심장부를 상징하는 직선의 빌딩 숲이 막연히 떠올랐다. 하지만 <닙스>가 위치한 운중동은, 판교라는 이름에 묶이지 않고 마땅히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듯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여백을 하늘에게 충분히 내어준, 낮은 주택가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고즈넉한 동네. 사람 사이의 가까운 온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구상옥 바텐더가 제대로 된 변방을 찾아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왜 운중동이었나. 

분당은 내가 30년을 지낸 곳이다. 이미 바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는 동네도 좋지만, 여기서 꼭 좋은 바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 파트너인 이진우 오너 바텐더 역시 분당에 거주하고 있어 다른 곳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판교라고 하면 다들 IT 중심지인 판교역 쪽을 생각하듯, 우리에게도 운중동은 본래 선택지에 없었는데, 소개받아 와보니 내가 그렸던 바의 모습과 이곳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렸던 바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단골 손님 위주로 분위기가 형성되는 바를 원했다. 편안하게 오가고, 퇴근 후에 한 잔하고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손님과 바텐더의 간격이 굉장히 가까운 느낌의 바 말이다. 그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라는 곳이 한 번 문턱을 넘기는 어렵지만, 이후 두 번 세번 오게 할 자신이 있었다. 


호스피탤러티에 자신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나. 

일면 그렇다.(웃음) 칵테일 얘기를 해보면 요즘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그들의 세련됨이나 과학적인 기법에 비하면 나는 다소 투박한 편이다. 물론 나만의 방식으로 칵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궁극적으로 손님과의 거리를 좁혀 나가고 그 안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좋은 바텐더’라는 생각이 든다.  


설명이 친절하다는 리뷰가 정말 많더라. 

운중동 상권은 연령대가 기본 40대로 높은 편이다. 커플이나 친구 보다는 부부,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다. 나도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인데, 마음에 든다. 그러다 보니 칵테일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분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설명을 잘 하게 된다.(웃음) 칵테일 가격에 대한 장벽도 있는데, 그래서 설명을 더 심도 있게 하려고 한다. 이건 비단 이 상권만의 탓은 아니고 서울 어디를 가도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위스키는 나보다 조예가 깊은 분들이 많아 되려 배우기도 한다. 좋은 채찍질이 된다. 


비교적 주말에 한산한 동네 아닌가.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이유가 있나. 

맞다. 확실히 매출면에서는 평일이 우세하다. 주말에 비교적 한가롭게 운영하면서 우리도 재정비하고 관리할 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무엇보다 <티앤프루프>에서 근무할 때 박성민 대표가 “동네 바는 언제나,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철학이 나한테는 정말 감명 깊었고, 나 역시 동네에서 바를 운영하는 오너로서 지켜가고 싶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던 20대 학생은 웨스턴 바로 입문해 청담의 다이닝 바 <카페 74>, <스틸>, 그리고 도곡동 <티앤프루프>까지 다양한 장르의 바를 거치며 내공을 쌓았다고 했다. 15년의 행보 끝에 오너의 길로 새롭게 들어선 길목에서 택한건 도시의 불빛을 닮은 화려함도, 정제된 세련됨도 아닌 따뜻한 동네 바. 그가 꺼내는 비기는 제대로 통했고, 한 번 왔던 손님의 재방문율이 체감상 9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원하는 바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신경쓴 점이 있다면. 

상권이 좋은 동네는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는 1층을 고집했다. 안으로 들어오면 편안한 무드를 주는 동시에 업장의 정체성인 카카오 닙스와 비슷한 우드톤을 연출하기 위해 목재를 활용했다. 목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만의 또다른 매력을 드러낸다는 점이 좋더라. 또 손님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편안하게끔 공간을 넓게 썼다. 


<닙스>는 어떤 의미인가. 

카카오 닙스에서 따왔다. 초콜릿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초적인 형태이자, 넓은 범위로는 향신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칵테일을 만들 때도 향신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또 주로 다루는 술이 위스키인데, 브라운 스피릿 대부분에서 카카오의 풍미가 느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짓게 됐다. 


향신료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가 리스크가 될 거라 생각하진 않았나. 

단어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가 분명 있지만, 사실 향신료는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깨, 흑임자, 마늘이 있고 바닐라나 시나몬처럼 카페에서 흔히 접하는 재료도 향신료다. 이 카테고리를 과연 잘 설득할 수 있을 지 스스로에게 반문했을 때, 자신 있었다. 

자신 있게 만든 칵테일들을 소개한다면. 

업장의 이름을 딴 시그너처 칵테일 ‘닙스 피즈’가 있다. 카카오 피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 잔이다. 보드카에 카카오닙스를 넣고 수비드로 천연 카카오 풍미를 뽑아낸 뒤, 아마로로 복합미를, 달걀 흰자가 형성하는 폼으로 부드러운 텍스처를, 흑임자로 한국적인 스파이스를 가미했다. 일년에 두 번, S/S, F/W 시즌 칵테일도 선보이는데 올 가을 겨울에 즐길만한 한 잔으로 ‘호피패션드’를 추천한다. 위스키 베이스의 올드패션드 타입인데, 묵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클래식에 비해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무화과를 갈아 호지차에 넣어 역시 수비드로 향을 뽑아내고, 헤이즐넛 리큐르와 비터를 더해 완성했다. 



맛을 보니 그의 설명 한 마디 한 마디가 칵테일에 직관적으로 녹아 있었다. 재료의 풍미를 숨기지 않되 부담스럽지 않게 드러내는 정직함. 낯선 칵테일 문화를 마주한 운중동 손님들에게 내는 기교 없는 친절한 맛이 오히려 그가 16년간 쌓아온 기교임을 알 수 있었다.  



칵테일의 영감은 어디서 받나. 패션디자인 전공으로 내재된 감각도 반영될 것 같은데. 

업장의 메인 테마가 향신료이기 때문에, 어떤 향신료를 쓸지 먼저 선택한다. 이후 그 향신료에 잘 어울리는 기주, 그리고 이 조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타입을 선택해 빌드업한다. 시각적인 효과도 중요하기 때문에 디자인 적인 요소도 많이 신경쓴다. 화려하고 불필요한 가니시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구조적인 미랄까. S/S, F/W 같은 단어를 메뉴에 녹여낸 것도 그런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픈 한 지 1년을 넘겼다. 돌아가도 여지없이 운중동을 선택할 것 같나. 

무조건. 처음에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매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한 분 한 분 단골 손님이 쌓인 지금,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 특성상 손님들과 가까워질 계기가 많아 정말 좋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12월, 판교역 쪽에 오리엔탈 무드의 바 <오리엔스>를 오픈한다. 이진우 바텐더, 조선팰리스를 거친 김성연 바텐더까지 세 명의 오너 바텐더가 합심해 멋진 공간을 준비 중이다. <닙스>가 빠르게 비교적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덕이다. 손님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더 잘하겠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