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I'M A

WOMAN

BARTENDER

Vol.2 호기 아닌 용기로 바꿔 놓은 풍경



<프렙> 박조아 오너 바텐더


여성 바텐더로서의 장점이나 힘든 점을 묻자 그는 “남성은 남자가, 여성은 여자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마땅한 장르가 있는 반면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성 바텐더를 지우고 우리가 그에게 새롭게 붙인 수식어는 ‘용기 있는’ 오너 바텐더다.  

2022년. 박조아는 서울에서 바텐더로 보낸 10여 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불쑥 경주로 향했다. 지인들의 응원 차 방문도 쉽지 않은 곳. 별달리 터전을 두고 있던 곳도 아니다. 초반에는 함께 일할 바텐더 구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구인 공고를 올리면 인근 지역에서까지 이력서가 날아들어온다. 서울은 물론이고 지역의 바텐더들이 쉬는 날이면 찾아오는 남쪽 지역의 거점이 됐고, 경주 여행객들에게도 필수 방문 장소가 됐다. 바의 불모지에 자신의 첫 번째 바를 오픈한 그의 용기 있는 선택이 지난 3년 반 동안 바꿔 놓은 풍경이다.


왜 경주였나. 

 

경주는 원체 좋아하는 도시였는데, 여행의 마무리로 들를 만한 바의 부재가 늘 아쉬웠다. 바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주변의 걱정을 많이 사기도 했지만 가게를 오픈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기 때문에 경주 자체가 큰 장애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지역 명물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님들이 서울의 바에서 추천받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덕분이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프렙>을 오픈함으로써 구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뾰족한 목표보다는 ‘내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특히 칵테일의 측면에서 그렇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근무하는 업장에서 그럴 수 없으니 집에서 만들어보곤 했다. 한창 발효에 꽂혔을 땐 냉장고 안에서 발효시킨 재료가 다 터져서 난리가 난적도 있었는데(웃음), 이제 무엇이든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 칵테일을 소개한다면. 


‘스파클업’은 <프렙> 초창기부터 있던 시그너처 메뉴다. 진과 맑게 거른 토마토 워터, 스파클링 와인 조합에 향긋한 딜 폼을 얹어 마무리한다. ‘비주’는 여행객이 많은 바의 특징을 고려해 경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한 잔을 선사하고 싶어 만들었다. 신라시대 화랑, 왕족들이 먹었던 술을 일컫는 말로 경주 약주인 대몽재, 땅콩 버터로 팻 워싱 Fat Washing(증류주에 지방의 풍미를 입히는 인퓨징 기법)한 버번, 수정과의 재료인 계피, 생강, 대추 등을 배합해  하룻동안 숙성시켜 완성한다. 손님에게 내기 직전 병에 박하 연기를 주입한 후 신라 토기 모양을 본 떠 제작한 잔에 따라 서브한다.


반대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있을텐데. 


그만둘 수 없다(웃음). 누구나 마음 속에 사표 하나 들고 있다지만, 오너의 사표는 영영 내밀 수 없는 것이랄까. 어떨 때는 직원일 때가 좋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다시 역시 오너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 마음을 이겨내는 게 정말 힘들다.

 


그럼에도 바텐더를 계속하는 이유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고, 여전히 느낀다. 또 다양한 사람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정말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지금 베버리진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웃음).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직업적 처우도 많이 좋아졌다. 한 마디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바텐더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기 보다는, 관계 맺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다. 자기 아집대로만 한다면 과연 그 사람이 바텐더일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칵테일 잘 만드는 건 너무 기본적이고, 접객면에서 이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접객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첫 번째이고, 무언가를 주는 것에 대한 기쁨을 진실로 느껴봐야 한다. 면접을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칵테일에 관심이 많아서 지원하거나, 사람이 좋아서 지원하거나. 둘 중에 후자의 친구들을 좀 더 눈 여겨 보게 되는 것 같다.



직원을 뽑을 때 성별도 신경쓰나. 


그때의 구성원을 보고 1:1까지는 아니더라도 성비를 고려해 뽑는 편이다. 하지만 여성 지원자가 거의 없다.



지역의 차이일까. 


서울 안에서도 지역적 차이가 있듯이 무시할 수는 없다. 바텐더라는 직업에 대해 젊은 층의 인식은 확실히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잘못된 시선도 있다. 얼마전 누가 직업을 묻기에 바텐더라고 했더니, 여자도 가도 되냐는 물음이 되돌아온 적도 있다.



그 외 여성 바텐더로서 겪은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언어적, 신체적 성희롱을 겪었고, 여전히 종종 겪지만 비단 여성 바텐더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성 바텐더들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다. 늘 자리에 술이 있고, 대화를 나누기 편한 위치에 있는 만큼 다른 직종에 비해 이런 일이 빈번하게 생기는 것 같다. 바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예의 없음에 관련한 문제이지, 단지 성별의 문제만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나. 


직원일 때는 마냥 단호하게 대할 수 없을 때 못들은 척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현장에서 강경하게 대응한다. 직원들이 그런 테이블을 접객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더이상의 출입을 불허한다.



이토록 강경한 태도에는 많은 용기가 동반된다. 단적으로, 손님을 잃을 용기가 필요하다. 대신 직원의 신뢰를 사는 것을 택한 그에게서 오너의 덕목을 엿본다. 그 밖에도 직원들과 꾸준히 스터디를 진행하고, 언어 등 실무에 필요한 학습을 지원하면서도 직원들끼리 시간을 보내도록 완전히 뒷짐을 질 때도 있다. 한 마디로, 끼어들 때 끼어들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이 정답이 없는 오너의 삶에서 그가 찾은 비결이다. 

반대로 여성 바텐더로서의 장점이 있다면. 


손님들의 말에 따르면, 여성 바텐더들이 공간에 불어넣는 특유의 편안함이 있는 것 같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더라. 이것도 일부분에 해당할 뿐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남성은 남자 배우가, 여성은 여자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마땅한 장르가 있는 반면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다. 여성 바텐더란 결국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희소한 것일 뿐, 저에게는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여성 오너 바텐더는 드물까. 


제가 바텐더를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일단 여성 바텐더 자체가 적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바텐더를 잠깐의 돈 벌이가 아닌, ‘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여성 바텐더는 당시에 더 드물었다. 자연스럽게 이탈한 것이다. 결혼과 육아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여성들은 호르몬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그에 무디지 않으면 밤낮이 바뀐 삶을 버티기 정말 힘든 것 같다. 30대 후반을 향해가면서 요즘 더욱 느끼고 있다.



바텐더를 평생 직업으로 삼는 기로에 서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 역시 이 직업을 가지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확신을 갖지 못했던 때가 있다. 그럴 때 업계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선배들을 봤다. <팩토리> 박시현 오너 바텐더 같은 분들은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도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 그런 분들이 잘 닦아주었으면 한다.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자문해보면 아직 잘 모르겠다(웃음). 



본인은 어떤 바텐더로 남고 싶나. 


‘잘 하는’ 박조아 바텐더. 업계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손님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바텐더이고 싶다. 주변을 봐도 그런 신뢰가 쌓였을 때 ‘아, 그 사람 참 잘하지’라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조언을 하기에는 아직 주제 넘는다는 듯 박조아 바텐더는 다른 선배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나섰다. 명실상부 한 지역을 대표하는 바로 자리 잡은 당당함, 그럼에도 한 뼘 낮은 그의 자세가 바텐더를 꿈꾸고, 오너 바텐더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이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EDITOR. 장새별

PHOTOGRPHER.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