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에서 가장 
[ 섹시한 ]
칵테일

바텐더에게 메이킹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손님의 취향을 찾는 일. 탄산감, 당도, 산미 등 구체적인 언어도, 날씨나 기분 같은 추상적인 요청에도 각자의 해석으로 손님을 설득하는 한 잔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그래서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단 한 가지 키워드를 제시해 봤다. 


세 번째 키워드는 ‘섹시한’이다. 본능을 자극하는 원초적 단어인 동시에, 지적이고 세련된 매력을 표현할 때 쓰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섹시 푸드’라는 유행어도 한 차례 흘러가며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 <카브론>의 이영학 바텐더, <스왈로> 김진환 바텐더, <페르마타> 양효준 바텐더의 해석도  그만큼 다채롭다. 

오감을 자극할 낯설고 새로운 여운

CORIANDER KICK by <카브론>

‘섹시 푸드(sexy food)’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음식에 ‘섹시하다’는 표현을 붙이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하지만 어쩐지 모호한 그 의미를  이영학 바텐더는 오감을 모두 감각하게 해 흥분을 자아내는 경험이라고 정의했다. <카브론>의 칵테일 ‘코리엔더 킥 CORIANDER KICK ’이 딱 그런 느낌. 고수, 할라피뇨, 라임주스, 설탕 등으로 만든 코디얼과 블랑코 데킬라가 만나, 마신 뒤 입안에 남는 스파이시하면서도 이국적인 여운이 낯설지만 자연스럽게 오감을 자극한다. 시그니처 칵테일 중 가장 먼저 개발한 칵테일로, 멕시코에서 흔히 나는 재료들을 데킬라와 함께 편안하게 풀어냈다. 고수잎과 할라피뇨를 풍성하게 얹은 가니시는 칵테일의 재료를 그대로 보여주고, 향을 한층 깊게 만드는 장치. 처음엔 향신료 특유의 향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허브와 스파이스, 단맛이 완전히 하나로 버무려져 ‘낯설다’라는 인상은 첫 모금에 바로 사라진다. 개성 강한 재료들이 서로 욕심내지 않고 조화를 이룬, 새롭고 신선한 자극으로 완성한 섹시함이다.

Who

이영학 바텐더


데킬라, 메즈칼을 전문으로 하는 <카브론>의 바텐더. 2009년부터 여러 클래식 바를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데킬라보다 위스키가, 티셔츠보다 정장이 훨씬 익숙하지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데킬라의 매력에 이끌려 과감히 정장을 벗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강렬한 스피릿인 데킬라와 메즈칼로만 칵테일 메뉴를 구성하기란 쉽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친숙하게 매력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노골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다가가는 한 잔

RED TOP FASHIONED by <스왈로> 

레드 왁스 실링이 상징적인 버번 위스키 메이커스 마크에서 영감을 받아 클래식 칵테일 올드패션드의 요소를 해체하고 새롭게 재조합했다. 농밀한 붉은 빛이 감도는 컬러에 걸맞게 그 이름도 ‘레드 탑 패션드 Red Top Fashioned’.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는 온더락 스타일로 강렬한 ‘와우 팩터’로 속도감있게 다가오는 화끈함보다, 슬그머니 다가와 은은히 여운을 남기는 한 잔을 김진환 바텐더는 섹시함으로 해석했다. 밀을 사용해 ‘버터 같은 버번’이라 불리는 메이커스 마크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카카오 버터가 들어간 초콜릿, 그중에서도 붉은색과의 연결성을 위해 딸기 초콜릿을 인퓨징해 베이스를 만들고, 꿀과 건포도로 만든 시럽으로 당을 대체해 복합적인 베리류의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가니시는 클래식 올드 패션드의 체리 대신, 위스키를 인퓨징하고 남은 초콜릿과 시럽을 만들고 남은 건포도를 재활용한 핑크빛 초콜릿을 사용하며 제로 웨이스트의 의미까지 더했다. 


Who

김진환 바텐더


<스왈로>의 오너 바텐더. 클래식 칵테일 베이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입힌 한 잔을 만든다. 영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항상 물음표를 던지는 자세가 그의 주변 모든 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만든다. 산토리 글로벌 스피리츠 코리아 앰배서더 활동이 새로운 칵테일 개발의 영감으로, 위인의 일화가 칵테일의 스토리로, 심지어 코로나 시절의 위기는 스왈로만의 특색 있는 게스트 바텐딩 이벤트를 만드는 기회가 됐다.  

익숙함을 배신하는 반전 

NURUK COFFE by <페르마타>

토마토 없이 토마토의 향과 질감을 표현해내거나, 일반적인 재료의 조합을 벗어난 반전을 만났을 때 양효준 바텐더는 ‘요놈 봐라?’하는 섹시함을 느낀다. 이 생각은 저녁에도 커피를 즐기고 싶다는 바텐더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칵테일 ‘누룩 커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인슈페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스키 베이스에 치커리 뿌리, 볶은 보리, 카카오닙스를 우려내 만든 ‘페이크 커피(Fake Coffee)’, 즉 대체커피를 사용하며, 평범해 보이는 크림 역시 막걸리를 빚고 남은 지게미를 활용해 만들어 누룩 특유의 쿰쿰한 풍미를 더하고 누룩 소금으로 짭짤한 감칠맛까지 놓치지 않았다. 접합점이 없어 보이는 재료들의 조합, 눈에 보이는 익숙한 요소를 모두 배신하는 맛의 복합성, 그리고 버려지는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시도야말로 양효준 바텐더가 표현하는 요즘 시대의 지적인 섹시함이다.


Who

양효준 바텐더


<페르마타>의 오너 바텐더. 버려지는 로컬 재료, 잘 알려지지 않은 재료들을 새로운 모습의 한 잔으로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커넥터, 그것이 요즘 시대의 바텐더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시장의 논리 안에서 불완전하게 취급받는 재료들이 그의 노력을 만나 의미있는 변환의 시간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발효는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는 하나의 테크닉적 요소다.



EDIT. 장새별, 홍수연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