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이드지 형태의 ‘호외요’ 메뉴판도 기억에 남는다. 메뉴판을 스토리텔링 매체로 활용하게 된 의도는.
매달 세 가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신문처럼 소식을 전했다. 바의 콘셉트와 유기적으로연결해 손님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자 한 것도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매달 신 메뉴를 개발하는 동력으로 삼았던 메뉴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얽매여 개발을 위한 개발을 하면서 메뉴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2023년부터는 시그너처 메뉴 체제로 완전히 전환했다. 현재 1920년대의 사진관, 라디오, 그 시대의 예술인 등을 모티프로 한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개편을 준비 중이다.
팀원들과 파인다이닝을 찾는 ‘고메 팀 빌딩’을 꾸준히 해왔다. 바텐더에게 왜 이런 경험이 필요한가.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바텐더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자부심이다. 밤낮이 바뀐 생활 속에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 괜찮은 환경에서 일하는 전문직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움이다. 스타급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소믈리에들이 요리를 어떤 태도와 어떤 언어로 설명하는 지, 그들의 환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경험해봐야 우리 공간에도 그 깊이가 담긴다. 낯선 재료를 경험해보는 것도 음료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
내∙외부적으로 발신하는 컨텐츠가 어떤 영감으로 남길 바라나.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포지션에 있다는 건 사실 참 좋은 일이다. 내가 만든 컨텐츠가 단순히 그 순간을 장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 확장되는 걸 볼 때 그렇다. 함께했던 팀원들이 나가서 자기 바를 차릴 때 ‘석호 형은 이렇게 했었지’라고 떠올리는 지점들이 있다면, 그래서 그 공간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멋지게 완성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보여준 멋의 방식이 후배들의 공간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씬에 남기고 싶은 진짜 컨텐츠다.
<탄산바>와 <커피바 케이>까지 세곳을 운영하다 최근 <소코> 한 곳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뼛속까지 이상주의자다. 코로나 때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했다. <커피바 케이>는 내 바텐더 생활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그 맥을 잇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권은 회복되지 않았고, 코로나 때 오픈한 <탄산바>는 ‘성황기’를 정말 단 15일 정도 경험했던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나면 돌아올 단골 손님층이 튼튼했던 바도 아닌데, 가라 앉는 배의 키를 쉽게 놓지 못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적자가 심화됐고,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모두 정리하게 됐다.
후퇴라는 시선이 두렵지는 않았나.
그보다는 ‘<소코>까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더 컸다. 후퇴라기 보다는 내 코어, 내 뿌리로 다시 되감기 한 것이라 생각한다. 2년여 간 큰 손실이 있었지만 많이 배웠다. 이상적인 행보를 이어가려면 반드시 현실적인 비즈니스 밸런스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나는 여전히 며칠쯤 문을 닫고 팀원들과 여행도 가고 싶고, 좋은데서 밥도 먹고, 가족들과도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그간 바텐더로서의 밸런스만 지켜왔던 것 같다. 이제야 사업적인 밸런스를 갖춰가는 ‘오너 바텐더’로서 거듭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