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칵테일 잔 너머의

장면 설계자


<소코> 손석호 오너 바텐더


“잘생겼다.” 손석호 바텐더 이름을 말하면, 대개의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이에 대한 그의 소회를 물은 적은 없으나 에디터는 긴 시간 대신 억울해했다. 외모로 퉁 치기엔, 그가 이 씬에 새겨온 이야기와 디테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처음 <소코>를 갔을 때를 기억한다. 1920년대 경성의 어느 모던보이의 방 같았던 공간. 구석구석 스며든 조명의 온도와 흐르는 물소리.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서 있던 손석호 바텐더. 등 뒤에 바의 로고가 새겨진 백 바를 차치하더라도, ‘아, 여기 정말 이 사람 바구나’ 싶었다. 그의 취향이 지문처럼 녹아든 공간, <소코>의 9년을 돌아봤다.

9주년을 축하한다. <소코>의 생일 파티인 ‘경성무도회’는 이제 사람들도 기다리는 시그너처 파티가 됐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우리를 사랑해주는 손님들, 업계 지인들을 초대해 프라이빗하게 여는 생일 파티다. 업장의 영감이 된 1920년대 베이스를 살려 ‘게츠비의 홈 파티’ 동양 버전을 상상했다. 평소 <소코>가 얼마나 정적이고 클래식한 공간인지를 역설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1년에 딱 하루만 모든 걸 뒤집는다. 5톤 트럭을 불러 매장의 테이블과 의자를 다 치우고, 100명 정도의 손님과 스탠딩으로 즐긴다. 공연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올해 9주년에는 4시간 동안 4개 팀의 공연이 진행됐다. 금전적으로는 마이너스지만, 잔치라는 게 원래 수익을 내려고 여는 건 아니지 않나. 무엇보다 나부터 엄청난 파티 피플이다(웃음).


<소코>의 후기를 보면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떤 무드를 연출하고 싶었나. 

내가 여행하며 눈과 머릿속에 담았던 모든 경험을 체화한 결과물이다. 파리와 교토의 텍스처, 그리고 부산 남포동과 초량 일대 일제 강점기 건물들에서 느꼈던 묘한 분위기들. 1920년대 경성에 ‘있었던’ 공간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있었을 법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내가 물을 좋아해서 공간에 물 흐르는 모습과 소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 오는 날 술이 잘 들어가는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나. 그런 감성적인 충족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유럽에 살다 온 할머니가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 같다고 하던데,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나의 취향이 온전히 녹아들되 일관된 콘셉트 속에서 손님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초창기 웰컴 스프나 도시락 서비스 같은 환대가 꽤 신선했다. 

일본 긴자 바텐더들은 커버차지를 단순한 자리값이 아니라 ‘럭셔리 차지’라고 부르더라. 공간과 서비스의 품격에 동의하는 비용이라는 뜻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스프는 매일 다르게 끓여냈다. 당시 함께했던 안기훈 셰프가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딱 100개만 해보자’라며 밀어붙였다(웃음). 벤또 서비스는 스태프 밀을 7시 오픈 직후에 오는 손님들에게 해피아워로 제공했다. 보통 바는 2차로 늦은 시간에 찾는데, 일찍 오시는 손님들에게 ‘우리랑 같이 밥 나눠 먹어요’라는 느낌으로 권했던 것이다. 지금은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중단했지만, 이런 시도들이 손님들에게 여기는 단순히 매출만 올리려는 바가 아니구나라는 인상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커버차지에 대해 궁금해서 묻는 손님은 종종 있지만, 컴플레인을 받아본 적은 없다시피하다. 

타블로이드지 형태의 ‘호외요’ 메뉴판도 기억에 남는다. 메뉴판을 스토리텔링 매체로 활용하게 된 의도는.  

매달 세 가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신문처럼 소식을 전했다. 바의 콘셉트와 유기적으로연결해 손님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자 한 것도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매달 신 메뉴를 개발하는 동력으로 삼았던 메뉴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얽매여 개발을 위한 개발을 하면서 메뉴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2023년부터는 시그너처 메뉴 체제로 완전히 전환했다. 현재 1920년대의 사진관, 라디오, 그 시대의 예술인 등을 모티프로 한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개편을 준비 중이다.


팀원들과 파인다이닝을 찾는 ‘고메 팀 빌딩’을 꾸준히 해왔다. 바텐더에게 왜 이런 경험이 필요한가.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바텐더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자부심이다. 밤낮이 바뀐 생활 속에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 괜찮은 환경에서 일하는 전문직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움이다. 스타급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소믈리에들이 요리를 어떤 태도와 어떤 언어로 설명하는 지, 그들의 환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경험해봐야 우리 공간에도 그 깊이가 담긴다. 낯선 재료를 경험해보는 것도 음료 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


내∙외부적으로 발신하는 컨텐츠가 어떤 영감으로 남길 바라나.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포지션에 있다는 건 사실 참 좋은 일이다. 내가 만든 컨텐츠가 단순히 그 순간을 장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 확장되는 걸 볼 때 그렇다. 함께했던 팀원들이 나가서 자기 바를 차릴 때 ‘석호 형은 이렇게 했었지’라고 떠올리는 지점들이 있다면, 그래서 그 공간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멋지게 완성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보여준 멋의 방식이 후배들의 공간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씬에 남기고 싶은 진짜 컨텐츠다.


<탄산바>와 <커피바 케이>까지 세곳을 운영하다 최근 <소코> 한 곳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뼛속까지 이상주의자다. 코로나 때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했다. <커피바 케이>는 내 바텐더 생활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그 맥을 잇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권은 회복되지 않았고, 코로나 때 오픈한 <탄산바>는 ‘성황기’를 정말 단 15일 정도 경험했던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나면 돌아올 단골 손님층이 튼튼했던 바도 아닌데, 가라 앉는 배의 키를 쉽게 놓지 못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적자가 심화됐고,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모두 정리하게 됐다.


후퇴라는 시선이 두렵지는 않았나. 

그보다는 ‘<소코>까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더 컸다. 후퇴라기 보다는 내 코어, 내 뿌리로 다시 되감기 한 것이라 생각한다. 2년여 간 큰 손실이 있었지만 많이 배웠다. 이상적인 행보를 이어가려면 반드시 현실적인 비즈니스 밸런스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나는 여전히 며칠쯤 문을 닫고 팀원들과 여행도 가고 싶고, 좋은데서 밥도 먹고, 가족들과도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 그간 바텐더로서의 밸런스만 지켜왔던 것 같다. 이제야 사업적인 밸런스를 갖춰가는 ‘오너 바텐더’로서 거듭나는 중이다.

칵테일에서 지키고자 하는 ‘코어’는 무엇인가. 최근 칵테일 씬의 기술적 화려함 속에서 <소코>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요즘 혁신적이고 세이버리한 칵테일이 유행이지만, 정작 맛있는 한 잔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다시 맛 그 자체에 집중하려 한다. 일명 ‘맛을 찾아서’다. 바텐더의 섬세한 미각이 ‘동의한’ 결과물을 선보일 것이다. 또, 우리의 정체성인 클래식 바텐딩의 ‘각’을 좀 더 세울 것이다. 이 정교한 스킬들이 왜 필요한지 기능적으로도 설명하는 영상 콘텐츠도 제작 중이다.


메뉴의 전면 개편인가.

그렇지 않다. 재료의 배합이나 맛 측면에서 지금 마셔도 촌스럽지 않은 메뉴들은 유지할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소코>의 클래식 카테고리인 ‘서울리스트 네그로니’가 있다. 전 세계 도시별 네그로니를 담은 캄파리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만든 칵테일이다.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처럼 서울 사람들을 정의하는 단어가 없을까 고민하다 이름 붙였다. 보타니스트 진과 캄파리, 샴보드, 유자 마멀레이드와 레몬, 그리고 샴페인을 조합해 화사하고 톡톡 튀는 서울 사람들의 톤을 담았다.


한남동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고 사랑받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슬럼프나 위기의 순간, 자신을 다시 바에 서게 한 ‘잔 너머의 힘’은 무엇이었나. 

가족들과 팀원이다.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 때 아내가 함께 버텨줬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 인원 감축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직원들 역시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나를 지지해줬다.

 

앞으로의 계획은. 

거창한 계획이라기 보다는, 글로벌 활동과 바텐더라는 본질의 균형을 찾고자 한다. 유니콘 같은 사장이 아니라, 해외 일정을 잘 컨트롤해서 바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려 한다. 직원들과 일상도 공유하고, 손님들에게 내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를 진실성 있게 전달하고 싶다.


손석호 바텐더가 지난 시간 공들여 만든 컨텐츠의 본질은 결국 공유에 있다. 그는 <소코>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낭만을 손님과 팀원들의 일상 속으로 침투시키는 장면을 설계해 왔다. 이상주의자로서 현실의 파도에 부딪히고 또 넘으며, 그의 멋은 이제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단단한 책임감이 되었다. 수많은 은유와 수식어를 지나, 비로소 가장 힘 있는 본동사에 도달한 <소코>의 내일이 기대된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