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어 바텐더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처음에는 화려하게 병을 돌리는 플레어 바텐더의 모습에 매료됐다.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칵테일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후 대구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겨 프렌치 레스토랑 <앙드뜨와>에서 일했고, 이후 <더 부즈>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클래식 칵테일의 길을 걷게 됐다. <더 부즈>에서 처음 접객한 손님께 ‘김렛’을 만들어 드렸는데, 단번에 반려를 당했다.(웃음) 하지만 그 손님이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응대하며 칵테일을 만들었고, 6개월이 지났을 때 소위 ‘빠꾸 없는’ 김렛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클래식 칵테일을 연마하는 과정은 거의 독학이었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옆에서 하나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당시 김세윤 대표가 유명하다는 바는 전부 데리고 다녔다. 직접 마셔보고, 바텐더의 움직임을 보면서 느끼게 해준 것이다. 혼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면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하나의 칵테일을 완성하기 위해 100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나만의 맛을 찾아 나갔다. 그러다 일본인 고바야시 바텐더가 <더 부즈>에 합류하면서 성장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다. 바로 옆에서 그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면서, 흩어져 있던 지식과 경험들이 비로소 하나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롤모델로 삼았던 인물이 있다면.
물론 수많은 선배 바텐더들을 보고 배웠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분을 꼽는다면 시작 단계에서 <머스크>의 김준희 바텐더, 중간에 열정과 영감을 불어넣어 준 <참>의 임병진 바텐더, 그리고 마지막에 내 실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준 고바야시 바텐더다.
<보이드>의 문을 연 지 3년이 지났다. 오너 바텐더로서 보낸 지난 시간은 어땠나.
한마디로 ‘좌충우돌’이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바텐더에서 오너 바텐더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역할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바텐더와 오너 바텐더, 어떤 지점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꼈나.
바텐더일 때도 ‘이 손님은 왜 여기에 올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오너 바텐더가 되니, 그 고민에 ‘매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해졌다. 더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3년간 가게를 운영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친절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웃음) 포털사이트의 평점을 보면 ‘칵테일이 맛있다’는 글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달리는 말이 ‘친절하다’는 평이다. 예전에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데 조금 더 집중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이곳에서 정말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하는 총체적 경험을 생각하게 된다.
'친절하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을 텐데, <보이드>가 보여주는 친절함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텐더의 ‘얼굴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치고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면, 과연 손님이 편안하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을까? 맛있는 칵테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위에 손님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세세한 서비스들이 더해져야 한다. 깨끗한 화장실, 정돈된 공간처럼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공간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작은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친절함이다.
아직 <보이드>를 모르는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당신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처음 온 손님께도 대화를 통해 최대한 취향을 맞춰주려 노력하지만, 한 잔만으로는 그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 번 이상 방문하면, 우리에게는 손님에 대한 꽤 많은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그러면 실패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어떤 칵테일을 주문하든, 항상 맛있는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손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보이드>만의 재미다.
바의 이름은 ‘보이드(Void)’, 비어있음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짙은 밀도의 디테일과 확고한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정직한 클래식 한 잔을 위해, 불필요한 모든 것을 비워내고 그 공간을 다시 손님들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 나가겠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의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