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모두가 새로움을 말할 때,

가장 오래된 것을 택하다



<보이드> 조정현 오너 바텐더


명실상부한 시그너처 칵테일의 시대다. 저마다의 독창적인 레시피로 무장한 바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은 곧 선택의 이유가 된다. 모두가 새로움을 말할 때, 가장 오래된 클래식 칵테일에 집중한 청담동 <보이드>. 흐름을 거스르며 조정현 오너 바텐더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보이드>에 들어서면 높은 확률로 ‘식사하셨어요?’라는 첫 질문을 받을 것이다. 으레 하는 안부인사 인가 하면, 곧이어 무엇을 먹고 마셨는 지, 이곳이 첫 번째 바 인지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받아 드는 첫 칵테일의 레피시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손님이 이전에 무엇을 먹었는 지가 왜 중요한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특히 첫 잔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마카롱 같은 디저트를 먹고 온 손님에게는 칵테일의 당도를 조금 더 올려야 한다. 이미 단맛에 익숙해진 혀에는 평소의 밸런스가 너무 시고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테이크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왔다면, 입안을 한번 깨끗하게 정리해줘야 하므로 좀 더 드라이하게 만든다. 그 첫 잔으로 전작을 지우고, 그 다음 잔부터 손님과 제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왜 클래식 칵테일을 고집하나.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이 클래식 바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시그너처 칵테일 시장이 대세가 되고, 반대로 클래식 칵테일이 블루오션이 된 셈이다. 하지만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클래식 칵테일로 승부를 본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야 하니까. 처음 <보이드>를 오픈할 때 흐름을 따라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기존에 제 칵테일을 사랑해줬던 손님들이 그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조금은 고집스럽더라도 이 길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언젠가는 다시 클래식 칵테일이 주목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웃음)


만드는 입장에서 느끼는 클래식 칵테일의 재미는 무엇인가.

정해진 재료, 정해진 규칙이라는 ‘링’ 안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링 안에서 잽을 날릴 수도, 훅을 날릴 수도 있다.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똑같은 레시피지로 보이겠지만, 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칵테일의 스타일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만들어낼 수 있다. 만드는 사람마다 다른 맛이 나온다는 것은, 곧 그 안에 바텐더의 ‘의도’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의도를 바탕으로 손님의 컨디션, 이전에 먹은 음식, 지금 마시고 싶은 기분 등을 고려해 맞춰줄 수 있는 비스포크. 그것이 바텐더의 능력이자, 클래식 칵테일을 만드는 재미다.


반대로 손님이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은. 

처음 오는 분들께 꼭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클래식 칵테일의 진짜 매력은, 여기서 마신 칵테일을 전 세계 어느 바에 가서도 다시 맛보고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 ‘김렛’ 하나만 마셔도 죽을 때까지 다 마셔보지 못할 만큼 무궁무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세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링 위에서 <보이드>만의 ‘한 끗’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결국 디테일의 합이다. ‘이 정도는 맛에 큰 영향이 없겠지’ 하고 쉽게 놓칠 수 있는 아주 작은 디테일들이 합쳐져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김렛을 만들 때, 셰이커에 진, 라임 주스, 시럽을 넣는 순서만 바꿔도 맛은 현저하게 달라진다. 이 원리를 이해하고 만드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보이드>의 칵테일은 그런 수많은 디테일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원기옥’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의 또 다른 예를 든다면. 

할 얘기가 너무 많지만, 우선 셰이킹 할 때 ‘단단하게 언 얼음’을 쓴다. 물론 바텐더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단단한 얼음을 써야 냉각 속도가 빠르고 칵테일의 맛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또 <보이드>는 제빙기 얼음을 쓰지 않고 직접 셰이킹 용 얼음을 재단한다. 5x5cm 크기의 원형 얼음 하나를 중심으로, 크기가 제각각인 얼음들이 셰이커 안의 빈 공간을 더 촘촘하게 채워 냉각 효율이 뛰어나다. ‘그냥 흔들면 다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베버리진’과 함께 영상을 통해 칵테일 메이킹 팁을 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칵테일에서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재료를 넣는 순서 하나, 사용하는 얼음 하나로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해보시길 바랐다. 그것이 설령 사소해 보일지라도 칵테일의 세계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숨김 없이 전부 털어놓겠다.


가장 까다로운 칵테일은. 

단연 ‘마티니’다. 들어가는 재료가 몇 개 안 되고, 대부분 투명한 재료들이라 작은 실수 하나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편법도 통하지 않는 칵테일이랄까. 바스푼 컨트롤 하나만 놓쳐도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는다. 술의 보관 온도, 얼음의 종류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다. 차갑게 얼린 믹싱 글라스, 단단하게 얼린 각얼음과, 냉동실에서 가장 차갑게 보관된 진. 등 모든 조건이 완벽해야 비로소 <보이드>의 마티니가 나온다. 일부러 마티니만 드시러 오는 손님들도 있어 나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애착이 가는 칵테일을 꼽는다면. 

'김렛’이다. 가장 많이 만들기도 했고, <더 부즈>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손님들이 저를 떠올리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당시 제 김렛이 인기가 좋았다.(웃음) 손님들이 제 성을 따서 ‘쪼렛’이라는 애칭도 붙여줬다. 소금을 전혀 넣지 않는데도 미세하게 솔티(salty)한 느낌이 난다고들 하더라.


글로 치면 그렇다.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 문장을 이루는 구조는 정해져 있을 지 모르지만,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하물며 어떤 부호를 쓰느냐에 따라 쓰는 이의 ‘지문’이 찍힌다. 조정현 바텐더의 칵테일은 이처럼 지문 가득한 문장으로 말을 걸어온다. 전 세계가 같은 레시피로 만들더라도 감히, <보이드>의 클래식 칵테일이은 곧 이곳의 시그너처 칵테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플레어 바텐더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처음에는 화려하게 병을 돌리는 플레어 바텐더의 모습에 매료됐다.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칵테일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점점 더 깊이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후 대구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겨 프렌치 레스토랑 <앙드뜨와>에서 일했고, 이후 <더 부즈>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클래식 칵테일의 길을 걷게 됐다. <더 부즈>에서 처음 접객한 손님께 ‘김렛’을 만들어 드렸는데, 단번에 반려를 당했다.(웃음) 하지만 그 손님이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응대하며 칵테일을 만들었고, 6개월이 지났을 때 소위 ‘빠꾸 없는’ 김렛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클래식 칵테일을 연마하는 과정은 거의 독학이었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옆에서 하나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당시 김세윤 대표가 유명하다는 바는 전부 데리고 다녔다. 직접 마셔보고, 바텐더의 움직임을 보면서 느끼게 해준 것이다. 혼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면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하나의 칵테일을 완성하기 위해 100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나만의 맛을 찾아 나갔다. 그러다 일본인 고바야시 바텐더가 <더 부즈>에 합류하면서 성장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다. 바로 옆에서 그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면서, 흩어져 있던 지식과 경험들이 비로소 하나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롤모델로 삼았던 인물이 있다면.

물론 수많은 선배 바텐더들을 보고 배웠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분을 꼽는다면 시작 단계에서 <머스크>의 김준희 바텐더, 중간에 열정과 영감을 불어넣어 준 <참>의 임병진 바텐더, 그리고 마지막에 내 실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준 고바야시 바텐더다.


<보이드>의 문을 연 지 3년이 지났다. 오너 바텐더로서 보낸 지난 시간은 어땠나.

한마디로 ‘좌충우돌’이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바텐더에서 오너 바텐더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역할에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바텐더와 오너 바텐더, 어떤 지점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꼈나. 

바텐더일 때도 ‘이 손님은 왜 여기에 올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오너 바텐더가 되니, 그 고민에 ‘매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해졌다. 더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3년간 가게를 운영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친절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웃음) 포털사이트의 평점을 보면 ‘칵테일이 맛있다’는 글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달리는 말이 ‘친절하다’는 평이다. 예전에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데 조금 더 집중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이곳에서 정말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하는 총체적 경험을 생각하게 된다.


'친절하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을 텐데, <보이드>가 보여주는 친절함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텐더의 ‘얼굴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치고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면, 과연 손님이 편안하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을까? 맛있는 칵테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위에 손님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세세한 서비스들이 더해져야 한다. 깨끗한 화장실, 정돈된 공간처럼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공간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작은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친절함이다.


아직 <보이드>를 모르는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당신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처음 온 손님께도 대화를 통해 최대한 취향을 맞춰주려 노력하지만, 한 잔만으로는 그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 번 이상 방문하면, 우리에게는 손님에 대한 꽤 많은 데이터가 쌓이게 된다. 그러면 실패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어떤 칵테일을 주문하든, 항상 맛있는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손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보이드>만의 재미다.


바의 이름은 ‘보이드(Void)’, 비어있음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짙은 밀도의 디테일과 확고한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정직한 클래식 한 잔을 위해, 불필요한 모든 것을 비워내고 그 공간을 다시 손님들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 나가겠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의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EDIT. 장새별

PHOTO. 윤동길

ASSIST. 염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