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Series
알파벳 ‘e’ 하나에 담긴 자존심, Whisky vs Whiskey
베버리진 WHY 시리즈
모두가 알 것 같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모르고, 어쩌면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고, 너무 사소해서 궁금증조차 품지 않았던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봅니다.
어떤 위스키 병에는 ‘Whisky’라고, 또 어떤 병에는 ‘Whiskey’라고 적혀 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오타일까, 아니면 국가별 맞춤법 차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e’ 한 글자에는 19세기 위스키 업계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자존심 싸움이 숨어있다.
하나의 물줄기에서 갈라진 이름
위스키의 어원은 게일어인 ‘우스게 바하(Uisge Beatha)’, 즉 ‘생명의 물’에서 왔다. 이 단어가 영어권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발음하기 편하게 앞 글자만 따서 ’우스게’로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며 영어식으로 점차 변형되어 우스키(Usky), 위스키(Whiskie)를 거쳐 지금에 정착했다. 처음엔 위스키 종주국인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모두 ‘Whisky’ 혹은 ‘Whiskie’를 주로 혼용해 사용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연속식 증류기의 발명이다.
“우리는 다르다”는 아일랜드의 선언
당시 아일랜드 증류소들은 전통적인 단식 증류기(Pot Still) 방식을 고수하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새로 발명된 연속식 증류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아가 가벼운 그레인 위스키에 개성 강한 몰트위스키를 섞어, 대중적이고 부드러운 맛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탄생시킨 것이다.
아일랜드 증류업자들은 이 방식을 ‘순수하지 못한 저급한 술’이라 비판했고, 급기야 스코틀랜드의 그레인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가 ‘위스키’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며 소송과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08년 영국 정부는 ‘위스키 및 기타 음용 증류주에 관한 왕립 위원회’를 열게 된다.
치열한 공방 끝에 1909년, 위원회는 결국 스코틀랜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패배한 아일랜드는 스카치위스키와 명확히 선을 긋기 위해 스펠링에 ‘e’를 끼워 넣기 시작했다. 이후 캐나다, 일본 등은 스코틀랜드의 영향으로 Whisky를,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위스키 문화를 전파한 미국은 ‘e’를 붙여 표기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 위스키임에도 ‘Whisky’라고 적는 브랜드들도 있다는 것이다.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와 올드 포레스터(Old Forester)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스코틀랜드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e를 뺀 스펠링을 고수하고 있다.
라벨에 적힌 알파벳 한 글자. 자신이 어떤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위스키 메이커들의 조용한 외침인 셈이다. 오늘 밤, 당신의 잔에 담긴 위스키는 ‘e’가 있는가, 없는가?
EDIT. 장새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