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술을 못 마셔도 

바텐더가 될 수 있나요?



<공간> 박준범(willy) 오너 바텐더


‘술을 못 마셔도 바텐더가 될 수 있을까?’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품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못 마시는 바텐더’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시작했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한 사람을 꼽았다. “그 친구는 해외 나갈 때 신발이 필요 없어요. 계속 업혀 다녀서.” 이 한마디로 검증은 끝났다. 북촌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따라 바 <공간>을 찾았다.  오너 바텐더, 윌리가 그 주인공이다.

정말 모두가 윌리를 언급했다. SNS에 술병을 안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진도 있더라. 술 못 마시는 바텐더로 유명한가.

 

맞다. 출장이나 행사 등 해외 일정을 자주 같이 다니다 보니 소문이 난 것 같다(웃음). 얼마 전 <공간> 유니폼을 바꾸면서 프로필 사진을 새로 찍었는데, 아예 술에 취한 콘셉트로 촬영했다. SNS에 올린 사진도 그때 찍은 거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


소주 3잔 정도. 예전엔 취하면 졸다가 집에 갔는데, 요즘엔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혹시 실수라도할까 그마저도 자제하는 편이다.



바텐더들은 보통 술을 잘 마시지 않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함에도 ‘바텐더’를 꿈꾸게 된 계기는.


대체로 그렇다. 최소한 저보다는 다들 잘 마신다(웃음). 저는 여러 직업을 거쳐 바텐더가 되었다. 베이스를 연주하다가, 헤어디자이너 였다가. 결과물에 만드는 사람의 개성이 담기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끌렸던 거 같다. 플레어 바가 유행하던 시절, 친구와 압구정의 한 바에 놀러갔는데 분위기, 바텐더의 퍼포먼스, 손님들의 텐션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일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땐 어려서 술을 못 마신다는 것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다. 그냥 마시고, 취하고, 기절하고, 또 마시고… 무한 반복이었다.


 

직업 특성상 술 마실 일이 많을텐데 어려움은 없나. 어떻게 극복하나.


테이스팅 정도는 괜찮다. 맛보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새로운 바를 탐색할 때는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극복을 할 수 없다(웃음). 안 마시는 게 최선이다. 다 같이 짠 하는 자리에서는 마시는 척만 하거나,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주문한다. 중간중간 바람도 쐬고 오고, 앉아 있지 않고 서 있는다. 같이 간 바텐더들에게 술잔을 넘기기도 하고, 주량을 넘기면 그냥 조용히 앉아서 졸고 있는다.



술을 권유하는 오너나 손님은 없었나.


초기에 플레어 바에서 일할 때는 좀 힘들었다. 단골들이 보틀을 주문해 같이 마시는 분위기였는데, 막내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취해서 화장실에서 자다가 혼난 적도 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고, 이후엔 그런 경험이 없었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불리함은 없었나.

 

해외 바 투어를 할 땐 어쩔 수 없이 불리하다.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니 갔을 때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고 싶지만, 몸이 안 받쳐준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바텐더들이 서비스를 주기도 하는데, 한 바에서 주량을 다 채워버리면 다음 바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서비스로 준 술을 마다하기도 애매하고. 칵테일은 테이크아웃도 안 되니까. 한국이라면 한두 잔 마시고 다음에 또 갈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쉽지 않다. 그런 게 조금 아쉽다. 



반대로 술을 못 마시는 바텐더라 좋은 점도 있나.


지갑을 지킬 수 있다(웃음). 쉬는 날 바에 가서 술 마시는 대신 운동을 하는 등 여가 시간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건강도 챙길 수 있고.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한테는 확실히 장점이다. 



바텐더라는 직업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그게 이 일의 가장 큰 매력 같다. 바텐더가 술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손님들로부터 얻는 것도 많다. 수의사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반려동물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헬스 트레이너 손님에게 운동 팁을 얻기도 한다. 마치 다양한 직업을 간접 경험하는 기분이다. 



어떤 경험을 거쳐 <공간>을 열게 됐고, 어떤 바를 만들고 싶었나.


처음에는 플레어 바에서 시작했는데, 그 문화는 점점 저물어가는 분위기였다. 스타일을 바꿔보고 싶어 전문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글래드 여의도, 포시즌스 호텔 서울 등에서 일했다. 호텔은 체계가 잘 잡혀 있어서 배울 게 많았지만, 조금 더 자유롭게 내 색깔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렇게 <앨리스 청담>을 거쳐 <공간>을 열게 됐다. 목표는 하나였다. 들어서는 순간 일상의 모든 스위치를 꺼도 괜찮은, 무조건 편하게 쉴 수 있는 바.

<공간>의 시그니처 칵테일 중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이 마시기 좋은 칵테일은.


‘레토’. 모스코뮬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다. 보드카에 팝콘을 넣어 팻워싱한 뒤, 배로 만든 슈럽과 라임 주스를 더해 상큼하게 마무리한다.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라는 뜻이자, 배우 유태오가 주연인 러시아 음악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용하는 재료와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바디감이 가볍고 산뜻해서, 술을 잘 못 마시는 분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논알코올 칵테일도 있나.


<공간>이 있는 안국은 차를 타고 데이트하러 오는 분들이 많고, 임신 중인 손님들도 자주 방문한다. 그래서 메뉴에는 없지만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재료를 사용해 손님의 입맛에 맞춰 논알코올 칵테일을 만들어 드리고 있다. 오늘 촬영에는 오미자, 크랜베리, 자몽, 파인애플로 만든 네 가지 코디얼에 바닐라 시럽과 라임을 더한 칵테일을 준비했다.



술을 못 마시는데 바텐더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텐더는 술을 마시는 직업이 아니라, 술을 만들고 그걸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을 나누는 직업이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술을 잘 마시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못 마신다고 바텐더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요즘은 책임 있는 음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바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손님들도 서비스를 받으면 정중히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잘 마신다고 잘하는 것도, 못 마신다고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바텐더가 되고 싶다면, 본인을 믿고 한 번 직진해보면 된다.

 


앞으로의 목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본받을 수 있는 바텐더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진짜 잘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그 목표를 계속 마음에 두고 꾸준히 나아가려고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바깥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DIT. 홍수연

PHOTO. 윤동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