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변방의 바


Vol.1 <연남마실> 이민규 오너 바텐더


경의선숲길공원 연남 구간의 끝자락, 가좌역으로 향하는 경의중앙선 철도가 만나는 삼각형 지대. 이곳의 이름은 ‘연남동 세모길’이다.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평일 낮에도 삼삼오오 산책하는 이들과  열차가 지나가는 풍경이 눈에 담긴다. 시끄러운 열차 소리가 멀어지고 나면 동네는 다시 고즈넉하고 차분해진다.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남아 있어 정겹다. 그리고 공원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연남마실>이 있다. 

오랜 시간, 그것도 화려한 호텔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아온 이민규 오너 바텐더는, 일명 ‘바 격전지’라 불리는 압구정ᐧ청담이나 한남동이 아닌 연남동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불모지에서 단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힘을 빼고, 덜어내고, 정말 ‘대중적인 바’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연남동으로 마실을 다녀왔다.

바텐더 일을 시작한 지 꽤 오래다. 어떤 경험과 경력을 거쳐 <연남마실>을 오픈하게 됐나.

<연남마실>은 아내와 함께 오픈했다. 둘 다 15~20년 가까이 호텔에서 일했다. 나는 바텐더로 시작해 관리자 직급까지 올라갔고, 아내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지만 한 곳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지치더라. 그때 아내가 먼저 “잠깐 쉬면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고, 함께 퇴사했다.

여행을 다니며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보려 했는데, 막상 떠나보니 여행하느라 바빴다.(웃음) 목표를 세운 것도, 큰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보며 마음속에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1년 반을 보냈다. 사실 내 바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자영업은 ‘최후의 보루’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으니, 매물이나 한 번 보러 다니자며 임장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엉망으로 운영하는 곳들이 많더라. 돌아보면 좀 건방진 생각이었지만 (웃음) ‘우리 둘이 하면 최소한 망하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마실’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바를 하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정한 게 이름이었다. ‘이웃집이나 동네 친구 집에 놀라간다’는 의미 그대로,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바 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낯설고 어려웠다.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 차려입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으니까. 그런 공간보다는 말 그대로 ‘마실 가듯’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바를 상상했다. 나중에 보니 ‘마시다’라는 말도   되더라. 이름 하나에 내가 만들고 싶던 바의 모습이 다 들어 있었다. 


지금은 연남동에도 바가 많지만, 오픈 당시엔 불모지였다. 청담이나 한남 같은 상권 대신새로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이미 형성된 상권에는 잘하고 있는 동료들이 많았다. ‘굳이 나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대신 메인 상권이 아닌 지역에도 ‘좋은 바’에 대한 갈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동네 안에서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바. 불모지에서 단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수많은 동네 중 연남동을 선택한 이유는.

서울 곳곳을 정말 많이 다녔다. 보광동이나 만리재로, 연남ᐧ상수ᐧ합정 등 메인 상권에서 살짝 떨어진 곳들을 주로 봤다. 지금의 공간은 가장 마지막으로 본 곳이었다.

11월쯤 저녁 시간대에 방문했는데, 동네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신 공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실제로 가정집이었고, 무엇보다 마당이 있었다. 집 중앙의 벽을 뚫어 테이블을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도 바로 떠올랐다. 결국 이 집이 좋아 연남동을 선택한 셈이다.


연남동에서 바를 찾는 손님들의 특징은.

정말 다양하다. 바를 찾아 다니는 분들이 오기도 하지만, 맥주 한 잔이나 칵테일 한 잔만 가볍게 즐기는 분들도 있다. 또 바인 줄 모르고 왔다가 즐기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산책하다 들르는 주민들도 많다. 처음엔 카페 몇 곳만 있던 골목이었는데, 지금은 상권이 형성되며 손님층도 다양해졌다.


연남동에서 바를 운영하는 장단점은.

일단 동네가 재미있다. 홍대와 가까운 곳으로, 서울에서 가장 젊고 활발한 에너지가 있는 지역 중 하나이지 않나. 다양한 사람, 특색 있는 업장들이 많아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기에도 좋다. 단점이라면 바텐더 동료들과의 교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리적 거리가 있다 보니, ‘같이 해볼까?’ 하다가도 주저하게 된다.

자리를 잡기까지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나.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리는 금방 잡았다. 업계에 오래 있었던 덕분에 지인들이나 동료들도 많이 찾아와줬고, 2월에 오픈했는데 봄이 되니 연남동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2020년 2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초반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다만 영업시간 제한이 걸리면서부터 좀 어려워졌다.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극복했나. 전환점이 된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냥 버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둘이서 운영하다가 인력 충원을 준비하던 중 영업 제한이 생겨 그대로 둘이 계속 일했다. 당시엔 코로나를 좀 가볍게 봤다. 메르스나 사스처럼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솔직히 그 시기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꽤 힘들었다. 퇴근 후 당시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위로였다. 코로나 전과 후로 산업이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으니, 어쩌면 전환점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그저 버티기만 했던 게 조금 아쉽긴 하다.


처음에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많았다고. 오히려 그런 캐주얼함이 바의 문턱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커피를 주문하려는 분들이 종종 있었고, 지금도  있다.(웃음)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야서야 바와 술병들이 보이는 구조라 그럴 거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 입장하자마자 바 공간과 술병들을 마주하면 위압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실’이라는 이름처럼 누구나 편하게 들어올 수 있길 바랐다. 어차피 바가 익숙한 분들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바 자리로 간다.(웃음)


시그니처 칵테일을 소개해달라.

‘추성고을의 네그로니’와 ‘청명한 셰리 코블러’ 두 가지를 꼽고 싶다. 둘 다 한국 술을 활용한 칵테일이다. 한국 술은 분명 우리나라 술인데, 정작 우리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대부분 소주나 막걸리 외엔 접해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바텐더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국 술을 보드카나 진처럼 접근해 풀어내는 것. 먼저, ‘추성고을의 네그로니’는 화이트 네그로니의 구조에 ‘추성주’를 접목했다. 원래 쌉싸름한 스타일의 리큐르를 사용하는데, ‘추성주’ 특유의 쓴맛이 베이스로 잘 어울렸다. ‘청명한 셰리 코블러’는 클래식 칵테일인 셰리 코블러에 ‘청명주’를 더했다. 셰리, 오렌지즙, 설탕시럽, 라즈베리로 만드는 기본 레시피에 청명주를 더하니 발효주 특유의 산미와 쌀의 단맛이 더해져 균형잡힌 맛으로 완성됐다. 베이스 재료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맛있다’는 감정을 확실하게 남기는 게 핵심이다.


한국 술을 칵테일에 적극 활용하게 된 계기는.

꽤 오래됐다. 호텔에서 일할 때도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술을 다뤄볼 기회가 있었다. <연남마실>에 외국인 손님도 있는 만큼, 칵테일로 한국 술을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술 칵테일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인근 소주 공방에서 체험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메뉴를 개발했다. 현재 선보이는 한국 술 칵테일은 세 가지이지만, 레시피 개발을 완료한 메뉴가 더 있다. 시즌에 맞춰 조금씩 추가할 계획이다.


‘아메리칸 뮬’은 판매 수익 일부를 유기동물구조협회에 기부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현재 키우는 강아지를 입양한 단체에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 그러다 ‘티토스 보드카’ 브랜드에서 제안을 받았다. 이 브랜드 창립자도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아 매년 유기견 보호 단체에 기부도 하고, SNS에서도 여러 캠페인을 진행한다. 보드카 베이스 칵테일인 ‘모스크뮬’을 ‘아메리칸 뮬’ 혹은 ‘티토스 뮬’이라는 이름으로 메뉴에 올리면, 우리뿐 아니라 브랜드 측에서도 우리가 후원하는 단체에 함께 기부한다. 힘든 시기에 강아지 덕분에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2019년 오픈 후 어느덧 6년차다. 처음과 지금, 본인 혹은 <연남마실>은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가장 큰 변화는 나이.(웃음) 오픈하면서 40대를 맞이했는데, 이제 중반이다. 어디서 봤는데 사람이 살면서 두 번 큰 노화를 겪는다더라. 45세쯤 되니 그 첫 번째를 체감한다. 예전엔 겁이 없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아지고 조심스러워졌다. 그 외에 큰 변화는 없다. 꾸준히, 잔잔하게 운영하고 있다.


다시 오픈을 준비하던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연남동을 선택하겠나.

음… 어렵다. 앞서 말했듯 바 밀집 상권에서 떨어져 있다는 점이 힘들긴 하다. 또 요즘은 연남동을 찾는 사람도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연남동을 찾던 연령대가 지금은 성수로 이동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바를 일반 상권 논리로 보기도 어렵다. 성수가 핫하긴 하지만 바 문화가 활발한 곳은 아니니까. 그래서 답은… 모르겠다!(웃음)


최근 식당도 함께 운영 중이라고 들었다.

맞다. 사실 <연남마실> 2호점 이야기도 있었는데, 바를 하나 더 운영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술을 줄이고, 코로나 이후 밤 문화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국인보다 외국인 손님 비중이 높은 곳도 많을 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먹으니, 식당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게 됐다. 마침 지인이 외식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걸 보며 가능성을 느꼈고,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고민하다 고양 화정에 가맹점을 오픈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일단 <연남마실>을 잘 운영하고 싶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대중적인 바’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요즘엔 콘셉트 중심의 바들이 주목받고, 아시아 50 베스트 바같은 어워즈의 영향력도 커졌지만, 나는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바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연남마실>도 문턱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결국 판단은 손님이 한다. 칵테일 가격을 낮게 잡은 편인데도 가격을 보고 놀라는 분들이 많고, 코로나 때는 위스키가 비싸도 없어서 못 팔았는데 지금은 또 아니다. 소비 흐름이 계속 변하고 있다. 그래도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마음보다 사람을 만나고, 바텐딩하는 일이 즐거워서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해 나가고 싶다.



EDIT. 홍수연

PHOTO. 염서정